
남명은 저술을 중시하지 않았고, 남아 있는 시도 200수가 안 되지만, 남아 있는 시들을 통해 남명의 정신세계를 살필 수 있다.
남명은 산청군 단성면 운리에 있는 단속사(斷俗寺)를 여러 번 찾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절에 있는 ‘정당매(政堂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읊었다.
寺破僧羸山不古(사파승리산불고) 절 부서지고 스님 파리하나 산은 옛 모습 아닌데.
前王自是未堪家(전왕자시미감가) 전 왕조서 제 스스로 집안 단속 못하였네.
化工正誤寒梅事(화공정오한매사) 조물주는 바로 찬 매화의 일 그르쳐서.
昨日開花今日花(작일개화금일화) 어제도 꽃 피우고 오늘도 꽃 피우누나.
고려 말기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낸 강회백(姜淮伯)은 고려가 망하자 지조를 지키지 않고 조선조에 벼슬하였다. 그런데 그가 단속사에 심은 매화는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있다고 하여 매화를 통해 강회백의 행적을 비판하고 있다.
기구(起句)에서는 현재 단속사는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된 이후 부서진 상태로 있고 거기에 거주하는 스님들의 모습도 파리하다고 해 형편없는 사찰의 분위기를 그려내었다. 거기에 비해 ‘산불고(山不古)’에서는 사찰의 현재 모습과는 상관없이 늘 일정한 이법(理法)을 지니고 있는 자연의 영원함을 떠올리고 있다.
승구에서는 고려왕조에서 정당문학을 지낸 강회백이 조선 태조 때 동북면 도순무사를 지낸 것을 비판하고 있다. 강회백이 단속사 뜰에다 매화를 심은 것은 매화의 지조를 본받고자 함인데, 강회백의 변절은 호된 질책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전구와 결구에서는 단속사의 정당매는 세인들이 바라보는 시각과 상관없이 어제도 꽃 피우고 오늘도 꽃을 피우고 있다고 했다. 매화를 심은 사람의 잘못된 행보로 매화도 추위에 얼어 죽거나 꽃을 피우지 못하거나 할 터인데, 매화는 어제도 꽃을 피우고 오늘도 꽃을 피워서 조물주가 일을 그르쳤다는 것이다.
단속사에 강회백이 심은 매화나무는 죽었는데, 백년 뒤 그의 증손 강용휴(姜用休)가 다시 심은 것이 지금 남아 있는 매화라 한다. 남명은 어려운 시기에 선비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줬고, 시를 통해서는 현실인식과 선비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위 글은 경남신문 2017년 6월 26일(월)자 23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