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인터뷰] 심지연 교수
[조선일보 인터뷰] 심지연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03.1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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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을 해방군처럼 쓴 교과서… 그들의 허위 광고에 속은 것"

  1980년대 들어 '한국민주당연구' '조선신민당 연구' '인민당연구' 등을 잇달아 펴내며 해방전후사 연구에 불을 지핀 심지연(沈之淵·66·사진) 교수가 지난 2월 경남대에서 정년퇴임 했다. 심 교수는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 과정을 30여년간 연구해왔고 작년 이승만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다룬 '한국정당정치사' 증보판을 내기도 했다. 한국정치학회장과 정당학회장을 지낸 중진 정치학자는 좌·우 이념 갈등의 분기점이 되는 해방전후사를 어떻게 볼까. 최근 논란을 빚은 고교 한국사 교과서 얘기부터 꺼냈다.

―어떤 교과서는 미군과 소련군의 포고문을 나란히 싣고, 미군은 점령군, 소련은 해방군처럼 받아들이게 기술하고 있다.

  "공산당 이외의 정당을 불허한 소련군과 공산당까지 합법화한 미(美)군정이 어떻게 같은가. 선전 문구가 아니라 실제로 정치과정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따져봐야 한다. 소련군 포고문은 요즘 같으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허위·과장 광고로 제재를 받을 것이다. 토지개혁도 유상몰수·유상분배를 택한 남쪽보다, 무상몰수·무상분배를 한 북쪽이 나은 것처럼 얘기하는데, 처분권 없이 경작권만 준 게 어떻게 제대로 된 토지개혁인가. 소련의 허위·과장 광고에 속은 것이다."

―대한민국이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출발 당시에 흠이 있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선택한 자유민주주의는 자기 수정 능력을 가진 체제였다. 국민과 언론, 정부가 노력해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든 원동력이 됐다. 북한은 자기 완결적인 체제라서, 수정이 안 되기 때문에 지금 이 모양이 됐다. 출발 당시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노력해서 이 정도 됐으면 성과를 인정해야 한다.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한 반성은 좋지만, 현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어릴 때 못살고, 공부 못했다고 평생 비관주의로 사는 것은 곤란하지 않은가."

―현대사 연구자들이 대한민국 출범 초기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는 게 아닌가.

  "연구자들의 체험이 역사 인식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유신과 5·18이 현대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엔 대학 캠퍼스가 살벌했다. 몇 명만 모여 있어도 경찰이 해산시킬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386세대도 50대에 접어든 지 오래다. 한 사회의 중추를 차지하는 세대가 과거를 부정하는 건 비극이다."

―해방 후 대한민국이 걸어온 정치과정에 점수를 매긴다면.

  "한국 정치는 점점 투명해지고, 발전해왔다. 우린 주자학적 명분론이 강해서 도덕적으로 정치를 낮게 평가하는 측면이 있다. 여야(與野)를 오가는 정권 교체도 이뤄졌고, 아시아에선 가장 모범적인 정치체제다. 정당이나 의회 모두 일본과 비교해서 뒤떨어지지 않는다. B+는 되는 게 아닌가."

―이승만의 단정(單政) 발언에 대한 비판과 남북협상파에 대한 기대, 둘 다 과도한 측면은 없나.

  "이 박사는 당시 북한에 사실상 정부인 임시인민위원회가 결성됐기 때문에, 우리도 정부를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말한 거다. 1948년 4월쯤 되면, 한반도에 통일정부가 들어서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게 됐다는 것은 김구나 김규식 선생도 알고 있었다. 그분들은 분단으로 인한 전쟁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갔을 거다. 우리는 패자에 대한 연민이 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이상을 실현하려 했던 노력과 비극적 최후 때문에 존경을 받는 것이다. 실현 불가능한 노력을 한 것은 높이 평가하지만, 당시 국제 정세를 정확히 꿰뚫어 본 세력이 집권할 수밖에 없었다."

 

 <위 글은 조선일보 2014년 3월 12일(수)자 25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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