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구조개혁위에 보내는 고언(苦言)
대학구조개혁위에 보내는 고언(苦言)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2.01.0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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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지성 2011 가을 겨울호(34호) 기고

대학구조개혁위에 보내는

고언(苦言)

최 호 성 (교육학과 교수) 

  지난 9월 5일 대학구조개혁위의 발표는 대학가에 상당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제한대학 명단에 포함된 대학이 겪는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잠시 안도의 한숨을 고르는 그 밖의 중하위권 대학들도 극도의 위협과 긴장감을 느끼는 건 마찬가지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대학들 움직임이나 국민의 여론 반응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고등교육 개혁의 강한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된 듯 보인다. 정치권까지 나서서 이번 평가에 대해 질타와 비판을 쏟아낸 것을 보더라도 우선 대학구조개혁의 사회적 담론화에 성공했다는 중평이다.

  1995년 대학설립준칙주의 도입 이후 우리나라 고등교육은 급속한 양적 팽창을 지속해 왔다. 반면, 오늘날 글로벌 무한 경쟁 속에서 한국의 대학들이 과연 국격(國格)에 어울리는 경쟁력을 지녔는지 자성(自省)의 목소리도 높다. 양적 성장의 혜택에 갇혀 대학교육의 질적 고도화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은 한국의 대학들을 불신하고 너도나도 선진 외국대학으로 떠나려는 형국이다.

  한편, 최근 우리 사회의 저출산·고령화 현상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방대학으로 갈수록 신입생 미충원 사태가 심각한 수준이다. 학생이 부족하니 대학의 교육재정은 튼튼할 리 만무하다. 교육 품질이나 교육환경도 좋을 턱이 없다. 고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이 80%를 웃돌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4-5년 이내 대학 진학 예정자의 수가 현재의 2/3선으로 격감한다니 대학은 생존을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이겨 내야 한다.

  오늘날 대학은 생존과 발전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다. 현행의 교육을 근본에서부터, 그리고 과감하게 혁신하는 길 밖에는 없다. 비록 대학 자율이 아니라 중앙 정부가 밀어붙인 꼴이긴 하지만, 대학의 구조 개혁은 이미 선택사양이 아닌 필수 과제가 되었다.

  2008년 시작된 대학정보공시제는 대학구조개혁의 효과적인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대학들은 주요 교육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학부모나 산업체에 수요자 선택권을 보장하고 대학간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대학으로서도 교육 체질 개선에 필요한 객관적 비교 잣대를 얻게 된 셈이다. 대학의 교육 정보 공시는 투명 선진 사회로 나아가는 우리에게 당연한 조치라 할 것이다. 또한 대학의 적극적인 변화를 유도하려는 중앙 정부의 구조개혁 노력도 수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 누가, 어떤 방식으로 대학의 바른 혁신을 이룩해낼 것인가이다. 적어도 민주 사회에서 존중되어야 할 대학의 다양성 및 자율성의 가치를 생각할 때, 현행 대학구조개혁위의 평가 방식과 발표가 과연 옳은 결정인지 의문이다. 대학이 일시적으로 긍정적 변화의 움직임을 보인다 해서 만족해 할 일은 아니다. 그것이 진정 대학의 고유 기능과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에 정부의 대학구조개혁 관련 9·5 발표에 대해 몇 가지 고언(苦言)을 제안했으면 한다.

  첫째, 대학 평가, 숫자놀음(number game)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번 대학구조개혁위의 평가 지표는 한마디로 객관적·정량적 숫자놀음을 맹신한 극단적 사례처럼 보인다. 대학의 역량을 파악하려면 사회 평판도, 교수의 연구 역량, 국제화 수준, 대학 재정의 건전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정부가 굳이 제한된 수치 지표만을 고집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평가의 일차적 목적이 소수의 경영부실 대학들을 가려내는데 있는 만큼 구태여 복잡한 정성 지표까지 적용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판단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심각한 대학 비리가 있거나 교육의 최소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해 경영부실이 확연한 대학만을 엄선했어야 한다. 하위 15%의 기준을 정해 두고 지역 안배까지 해 가면서 대학간 상대평가를 할 이유가 없었다고 본다.

  앞으로의 대학평가는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평가지표별 일정 기준을 충족시킨 대학에 대해서는 그 자격과 역량을 인정해 주면 된다. 그래야 작금의 대학들이 자행하고 있는 실적 쌓기 편법도 막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대학은 한두 가지 지표에 근거하여 한줄 세우기를 강요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고유한 생명체이다. 국·공립대학과 사립대의 여건이 다르고,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의 상황이 같지 않으며, 학생 정원 규모나 사범대·예체능계 중점 대학의 교육 특성이 사뭇 다르다. 이제 소수의 계량적 지표만으로 대학을 상대평가하려는 발상은 버려야 한다. 

  둘째, 대학구조개혁위는 결과 발표에 있어 그 명칭이나 시점 선택에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

  대학구조개혁 모형도에 따르면, 우선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과 학자금대출 제한대학이 선정되며, 대출제한대학을 실사하여 경영부실대학 여부를 진단하게 된다. 경영부실대학은 2년간의 컨설팅을 받게 되며 그 이후 퇴출여부를 결정토록 되어 있다. 이 모형의 단계별 접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듣는 이의 혼돈이나 과도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는 용어를 가려서 사용했어야 한다.

  ‘학자금대출제한대학‘과 달리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은 다른 함의를 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학 교육의 속사정을 자세히 알 수 없는 일반 국민들에게 당초 의도한바 이상으로 위협적 의미를 전달하였다. 정부는 국·공·사립을 막론하고 매년 대학에 대해 상당한 규모의 재정지원을 해 왔으며, 이번 정부의 발표 명단에서 빠진 대학은 그 동안 받아 온 ‘거액의 국고 지원 혜택(?)을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는 오해를 낳고 있다. 학부모나 산업체에서 ‘재정지원제한대학=퇴출 대학’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한 추측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 정부는 재정지원대학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꼼수’가 아닐 수 없다.

  대학의 명단 발표 시점도 그렇다. 신입생 수시모집 가까이 언론에 보도함으로써, 고3 수험생들이 불필요한 혼란을 겪었다. 갑작스레 명단에 포함된 대학들은 신입생 모집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수험생들에게 올바른 진학정보를 제시했을 뿐이라고 강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진정 정부는 이번에 발표된 43개 재정지원대학들을 모두 퇴출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효과적인 대학 변화를 위해서 정부는 이와 다른 방법으로 경고나 권고의 의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재정지원대학의 명단이 교통신호등의 노란불에 비유할 수 있다면, 앞으로 정부는 그 명칭이나 발표 방식 등에서 좀 더 신중함을 보여야 할 것이다. 

  셋째, 현행 대학평가의 지표들은 합리적으로 재조정되어야 한다.

  대학교육의 질적인 종합 정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더라도, 현행 평가 지표의 적용 방법에 있어서 보다 적극적인 수정·보완이 필요하다.

  먼저, 취업률의 평가이다. 대학 교육이 대중화된 상황에서 대학생의 취업역량을 높이는 일은 대학의 기본 교육활동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청년 취업이 대학만의 노력으로, 그것도 대학간의 무한경쟁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사대·예술대와 같은 취업 취약 전공이 있는가 하면 1년치 취업률만으로 대학의 교육역량을 가늠하는 것도 무리이다. 대학생 취업이 국가의 일자리 창출과 연관되어 있는 만큼, 대학들로 하여금 취업률 소수점 자리까지 매달리게 해서는 곤란하다. 앞으로 취업률 평가는 절대 기준치를 설정해 두거나 등급제를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 대학의 지나친 편법도 막고 졸업생들이 ‘묻지마 취업’으로 내몰리지도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재학생 충원율의 평가이다. 신입생이나 편입생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지방대들에게 정원 외 신입생 인원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재학생들마저 수도권 대학으로 빼앗기는 현실이다. 한마디로, 재학생 충원율은 국·공·사립대를 막론하고 지방대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평가지표이다. 지방대학이 가까스로 90%를 유지하는 형편이지만 수도권 대학들은 130%를 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일률적으로 재학생 충원율을 반영한 것이나 그 비율을 30%로 배정한 것은 지극히 비상식적이다. 향후 재학생 충원율 반영비율을 20% 이하로 축소하는 한편, 당해 년도 재학생 충원율이 100%에 도달하면 평가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학사관리·교육과정 운영에서 ‘소규모 강좌’ 비율의 문제이다. 이 지표에서는 20명 이하의 강좌 수를 계산한다. 물론 강좌 당 학생 수가 적으면 좋겠지만 수업 품질을 좌우하는 일차적 조건은 아니다. 강좌 당 학생 수는 강좌의 성격과 특성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청년의 이상과 꿈’, ‘창의성과 인성’, ‘올바른 세계관과 자아 혁신’ 등 교양 강좌들의 경우 학생 수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소규모 강좌만을 고집한다면 하버드대학교 마이클 샌델(M. J. Sandel)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강좌는 생겨날 수 없다. 또한 태블릿PC의 모바일 동영상 강의가 확산되는 세상이다. 좋은 수업은 콘텐츠의 질로써 승부해야지, 강좌 당 학생 수로 가늠해선 안 될 것이다.

  넷째, 정부는 대학의 등록금과 관련하여 국민적 오해를 불식시켜야 한다.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은 민간교육비 지출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그 대부분을 사립대학이 감당한다.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의 고등교육체제는 사립대학을 제쳐 두고 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 등록금 부담 = 사립대 고액 등록금’이라는 작위적 등식이 확산되고 있다. 어느 선진 국가에서도 국가 최고 수준의 감사기관이 사학 등록금의 적정성을 조사한 일이 없다. 중앙 정부가 사립대로 하여금 일정액의 등록금을 인하토록 강요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최근까지 반값등록금의 논쟁은 식지 않고 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등록금이 비싸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적어도 우리 사회는 등록금 문제에 대해 균형감각을 상실했다고 본다. 대학이 터무니없이 높은 등록금을 징수하고 있다는 선입견이 팽배하다. 대학이 마치 부정축재 기관처럼 호도되고 있는 형국이다. ‘등록금인상수준‘이라는 평가지표가 합당한 지를 따지지 않더라도, 적어도 정부는 대학 등록금에 대한 최근의 국민적 오해는 해소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백번 양보해서 대학 등록금 인하 수준을 대학평가에 포함시킬 수 있다 하자. 그렇더라도 현실은 제대로 반영되어야 한다. 대학의 등록금 인상 수준이 중요한 게 아니다. 현재 대학이 얼마의 등록금을 받고 있는지,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미치는 등록금 부담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려서 평가해야 한다. 재학생 1만 명 이상 93개 대학에서 명목등록금 70위권의 대학과 10위권 이내의 대학은 다르다. 비록 등록금 인상율이 동일하더라도 학부모가 지출할 등록금 액수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학생들이 느끼는 등록금 부담감도 결코 같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대학의 등록금 인상 수준을 평가 지표로 활용할 것이 아니라, 평가년도의 명목상 평균 등록금 액수와 학생이 부담하는 실질 등록금액을 반영하는 쪽이 더 타당하다. 한편. 학생의 등록금 대출 상환율을 대학 평가의 지표로 반영한 것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다섯째, 대학 경영 부실을 막기 위해서는 대학의 재정 건전성을 평가해야 한다.

  곧 밀어닥칠 교육 쓰나미를 대비하여, 국·공·사립을 막론하고 대학은 재정 건전성을 제고하는 데 전력하고 있다. 위기의 시대에 특히 사립대의 재정 충실도는 필생적 요건이다. 법인화를 추진하는 국립대학도 그 예외는 아니다. 이와 같이 대학의 재정 건실도가 중요한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평가지표에서 제외한 것은 잘못이다. 사립대 경영에서 재단의 재정 지원 역량(가령, 법인전입금, 수익용 사업 실적, 각종 기금 확충 노력 등)은 필수적이다. 향후 대학 평가에서는 법인이 대학 발전에 투자하는 정도와 재정 건전성을 ‘법인지표’로 반드시 반영해야 할 것이다.

  맺으면서 : 대학구조개혁, 더디어도 바로 가야 한다.

  필자는 정부의 대학구조개혁 노력을 반대하지 않는다. 변화하는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대학의 책임도 크다. 또한 더 이상 대학으로서의 정체성과 기능을 유지하기 어려운 대학들도 있음을 인정한다. 한편 정부는 대학이 올바른 좌표를 설정하여 부단히 혁신해 가도록 지도·감독할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학의 구조개혁을 단기간에 완결하려고 서둘러서는 안 된다. 대학의 자율적 혁신을 끌어내지 못한 채 인위적·타율적 강제에 의해 추진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대학 또한 시장경제체제에 편입되어 있다. 교육시장에서도 기본적인 경제 원리가 작동한다. 대학은 모든 정보를 공시하고 있으며, 교육 소비자는 합리적이고 현명한 수요자 선택권을 발휘하고 있다. 수요자의 지혜와 공급자의 이성을 믿고 시장원리에 맡겨 두자. 대학의 구조개혁은 부도 위기의 부실기업을 해체하고 정리하는 일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대학의 구조조정만큼은 ‘최소 개입과 최대 자율’의 방식을 취해야 한다. 정부는 대학 경영의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일관성 있게 적용하면 된다. 비록 더딘 듯 보이지만, 대학의 구조조정은 궁극적으로 대학 스스로가 책임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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