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항만노사관계
기로에 선 항만노사관계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05.09.13 02: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담합체제의 해체 이후 민주적 재편 가능성
"새롭게 지향해야 할 항만노사관계의 모델은 '갈등의 사전 해결'과 '전략적 조정'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모델이 되어야"

1. 항운노조 - '간부노조'의 성격을 가져

정부와 하역업체, 그리고 항운노조가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담합(collusion)적 노사관계'가 축적방식과 시장 환경의 변화라는 외적요인과 주체의 권력자원(power resource), 전략적 선택, 전략적 상호작용의 변화 등 내적 요인들에 의해 해체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항만노사관계는 노동조합에 의해 노무공급이 이루어지는 특수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클로즈드숍(closed shop)에 기반을 둔 노무공급독점은 사실상 항만노동시장 통제권을 확보한 것으로 항운노조의 최대 권력자원이 되어왔다. 기존 담합적 노사관계의 내용을 살펴보면, 정부는 하역업체에 대해서는 면허제 유지로 신규업체의 진입을 규제해 주었고, 노동조합에게는 직업안정법상 노무공급독점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었다. 이에 대해 하역업체와 항운노조는 국가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으며 노사간에도 별다른 문제없이 협조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하청 기업화된 항운노조'가 조합원들의 이익을 보장해준 것은 아니다. 항운노조는 일종의 '간부노조'(crade union)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담합의 결실'은 상층간부가 독점해왔다.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항운노조 비리문제는 이와 같은 조직적 성격을 반영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던 기존 항만노사관계 체제는 '환경적 요인'의 변화에 따라 '재구조화'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가장 핵심적 요인은 축적방식 및 기술조건의 변화이다. '컨테이너화'(containerization)와 선박의 대형화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항만산업은 단순육체노동에 의존했던 과거의 작업방식에서 탈피해 대규모 장치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정기선 비중이 높아지면서 항만산업의 특수성을 초래했던 물량의 파동성도 상당부분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항만산업에 있어 기계화의 진전은 노동시장의 내부구성을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다. 컨테이너전용 기계화부두가 건설되면서 하역업체들은 기계장비를 다룰 신규노동자들 상당수를 항운노조원들이 아니라 직접 채용에 나섬으로써 노동시장은 하역업체 소속 '상용직' 노동자와 항운노조가 공급하는 '일용직' 노동자로 분절화되기 시작했다. 기계화의 진전은 자본에 있어서는 축적의 고도화 및 효율화를 달성할 기회가 되었지만 항운노조에게는 조직의 근간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2. 경쟁적 시장조건 - 항만산업의 구조변화를 촉발(담합체제 해체)

경쟁적 시장조건 역시 기존 체제의 전환을 강제하는 환경적 요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생산자본의 세계화와 다국적화에 따라 글로벌 네트워크 생산체제 즉, SCM(Supply Chain Management) 체제가 구축되고 있다. 대형정기선사의 항로는 대륙별 중심항만(Hub-Port)으로 연결된 기간항로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생산기능의 국제적 재배치는 동북아지역의 물동량을 급격히 증가시키고 있으나 중심항만을 둘러싼 경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항만산업을 둘러싼 경쟁의 양상은 국가간 항만경쟁체제, 국가내 항만간 경쟁체제, 특정 항만내 부두간 경쟁체제로 다차원화되었다. 이와 같은 경쟁압력은 항만산업의 구조변화를 촉발하고 있는데 항만 민영화를 비롯해, 항만관리·운영제도의 획기적 변화로 손꼽히는 항만공사(PA)체제 도입, 항만물류산업분야의 자유무역지역과 경제자유구역화, 외국 항만운영업체의 진입확대로 외국자본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한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대규모 신항만 개발을 추진하면서 기존 항만의 구조조정 문제까지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존 항만노사관계 체제의 전환을 압박하는 '주체적 요인'은 새로운 노동계급의 성장과 관련된 것이다. 담합체제에서 벗어나 있던 주체의 권력자원이 증대되면서 기존 불균형한 권력관계에 대한 저항이 발생하고 있다. 동시에 새로운 주체는 권력자원의 증대를 위해 기존 체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항운노조와 이념·지향·전략을 달리하는 전국운송하역노조는 1988년 화물연맹 설립 이후 꾸준한 조직적 성장을 이루어왔다. 새로운 노동계급이 주도한 1999년 말∼2000년 초 부산항 신선대·우암부두와 2003년 화물연대 노동쟁의는 기존 항만노사관계 체제에 균열을 가하는 계기였다. 항만물류체계를 마비시켰던 2차례의 노동쟁의는 새로운 주체의 '성장효과'로서 항만분야에서도 노동계급간 경쟁체제가 도래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신선대·우암부두 노동쟁의 사례는 기존 '담합체제'를 유지하려는 힘과 새로운 노사관계 체제를 형성하려는 힘이 교차하면서 충돌한 것이다. 화물연대 노동쟁의 역시 운송하역노조가 권력자원의 확대를 위해 비정규노동자들의 조직화전략을 선택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항만노사관계의 '담합체제'를 지탱해주었던 토대들은 환경적 요인과 주체적 요인의 변화에 따라 대부분 효력을 잃거나 해체되고 있다. 축적방식(기술적 조건)과 경쟁적 시장조건, 그리고 항만산업의 구조변동에 따라 정부와 하역업체도 이미 기존 '담합체제'를 비효율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정부와 하역업체가 항만노무공급체계의 개편을 끊임없이 제기해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 '국가권력 주도'의 경제발전전략은 '자본(시장)권력 주도'의 발전체제로 전환되었고 하역업체들의 기득권 보호로 주어졌던 면허(허가)제도 등록제로 바뀌어 진입장벽이 없어졌다. 정부는 '시장 규제적 개입'은 줄이고 있으나 '자본후원적 개입'은 오히려 강화하고 있으며 기업의 '시장확대능력'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게 평가되고 있다. 이제 정부와 자본은 시장경쟁의 메커니즘을 교란하는 행위자나 제도들에 대해서는 대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정부와 하역업체는 항만노동시장을 통제하고 있는 항운노조와 제도(노무공급독점권)를 더 이상 용인하기 어려워졌다. 최근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항만노무공급체계 개편은 항운노조의 최대 권력자원을 박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담합체제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정부의 항만노동정책의 핵심은 국가 전체의 축적체제를 교란시킬 수 있는 항만파업을 제어하는 것이다. 그동안 항만노사관계에서 '무파업'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항운노조가 조합원들을 거의 완벽하게 통제한 상태에서 정부·하역업체 그리고 항운노조간 담합체제가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다. 정부와 하역업체를 대신하여 항운노조가 조합원들을 통제하면서 항만노사관계의 절대적 안정을 유지해 온 것이다. 항운노조 채용비리는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져 왔지만 담합체제의 유지를 위해 묵인해온 측면이 크다. 이와 같은 조건 속에서 정부와 하역업체들은 전략적 선택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담합체제의 '유지비용'과 새로운 노사관계 체제로의 '전환비용'을 전략적으로 계산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의미이다. 전환의 비용은 독점적 노무공급제도의 박탈에 따른 비용과 신규노조의 진입 및 성장에 따른 '안정적' 노사관계의 위협과 관련된 것이다. 즉 정부와 하역업체들은 항만노동시장에서 항운노조의 독점적 지위는 해체되길 바라지만, 신규노조의 진입 및 성장에 대해서는 노사관계의 불안정을 이유로 부정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향후 정부와 하역업체는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비용과 새로운 체제가 형성됨으로써 발생하는 비용, 즉 전환의 비용을 판단하여 전략적 선택을 할 것으로 판단된다.

3. 새롭게 지향해야 할 노사관계 - '협조형'과 '대립형'이 공존

지금까지 정부와 하역업체는 새로운 환경적 요인과 주체적 요인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는 전략을 선택해왔다. 그러나 그동안 새로운 노동계급의 성장을 봉쇄하는 효과를 보여 왔던 복수노조 금지조항이 2007년부터 전면적으로 허용되면 신선대·우암부두 노동쟁의에서처럼 새로운 주체의 '지위정당성'마저 부정할 수 있었던 제도적 제약은 효력을 잃게 된다. 따라서 항만에서의 노동계급간 경쟁체제는 본격화될 것이다. 항만노사관계는 한 동안 항운노조를 한 축으로 하는 '협조형'(cooperation) 노사관계와 운송하역노조를 다른 축으로 하는 '대립형'(conflict) 노사관계가 공존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하역업체는 항운노조가 정부와 하역업체의 정책에 순응하는 한 새로운 '포섭전략'(inclusionary strategy)을, 국가와 정부에 도전전략을 표방하고 있는 운송하역노조에 대해서는 '배제전략'(exclusionary strategy)을 유지할 것이다. 이와 같은 정부와 하역업체의 '선택적 포섭과 배제전략' 속에서도 노사관계를 둘러싼 환경요인의 변화와 주체들의 권력자원 변화,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주체들의 새로운 전략적 선택 및 전략적 상호작용의 결과가 향후 비교적 장기간 동안 지속될 항만노사관계의 내용과 성격을 구조화 할 것이다.

정부는 '동북아물류중심국가'로 도약한다는 기조아래 항만산업의 '구조개혁'을 단행하고 있고, 대규모 항만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기업들로 물류비 절감을 통한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이해관계로 항만노사관계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담합형 노사관계가 초래하는 비효율과 극심한 노사관계의 불안정을 초래하는 대립형 노사관계는 정부, 기업, 노동조합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새롭게 지향해야할 항만노사관계의 모델은 주체간 권력자원 배분이 비교적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갈등의 제도화'가 잘 이루어져 있어 갈등의 사전 해결 및 '전략적 조정'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모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백두주 강의전담교수(심리사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