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기 교수, 비무장지대 대성동초등학교 특별 초청특강 다녀 온 이야기
정성기 교수, 비무장지대 대성동초등학교 특별 초청특강 다녀 온 이야기
  • 월영소식
  • 승인 2018.07.1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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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의 분단한국에서 평화와 다시 하나됨(재통일)의 길 찾기’ 주제로 진행
대성동초등학교에 보낸 응원 편지가 인연이 되어 처음으로 초청특강 성사

 

 

  본교 경제금융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저는 지난 13일, 상상해 본 적이 없는 특별한 초청특강을 하고 왔습니다. 제가 다녀 온 곳은 남해안에서 북으로 가장 먼 휴전선 너머 비무장지대(DMZ)에 있는 유일한 학교, 전교생 30여 명, 교직원이 20여 명인 초미니 대성동초등학교입니다. 이 학교 진영진 교장 선생님이 초대해 주셨는데, 교무부장 이상재 선생님에 의하면, 저에 대한 초대가 매우 파격적이고, 전례가 없었답니다. 남북정상회담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답니다. 그 이후에도 이 지역에 대한 출입은 엄격히 제한되며, 학교에서 초대할 경우 시장급 예우를 받는 대성동 평화의 마을 이장과 한국정부가 아니라 유엔사령부 관할이라 이 유엔사의 허가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처음으로 초청특강을 실시하게 되었답니다(최근 예능방송 사상 처음으로 ‘1박 2일’에 이 마을과 학교가 개방되기도 했지요).    

  이런 특별한 초청은 지난 학보(’18.06.05. ‘DMZ로 찾아간 따뜻한 편지 한 통’)에 소개된 것처럼,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제가 대성동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과 학생들 앞으로 보낸 두 통의 편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감동적인 첫 남북정상회담 때 화동으로 나온 두 학생이 다니는 학교가 바로 이 대성동초등학교이고, 그 정상회담 이후, 밤낮없이 엄청난 소리를 내던 대남·대북 확성기가 철거되면서 고통 받던 마을주민들이 잔치를 하고, 교사·학생들도 이제야 교실 밖에서 야외수업도 할 수 있겠다며 좋아한다는 뉴스를 보고, 진심어린 위로와 축하의 뜻을 담은 편지를 보냈지요. 아울러 경남 마산·창원·진해지역은 휴전선에서 가장 멀지만, 6.25 때는 한 때 최후의 전선이었고, 지금은 대표적인 방위산업기지요, 해군 기지라는 사실, 한 때 영세중립화운동의 출발점이었으며, 박재규·송민순 장관, 이봉조 차관 등 통일부 장차관이 세 분이나 배출된 지역이기도 하다는 특별한 분단·통일 인연을 얘기했지요. 개인적으로 탈분단, 통일된 경제·사회에 대한 관심이 깊어서 대학시절 졸업논문 주제로 삼고, 교수가 된 후 이런 주제의 책을 내기도 한 각별한 관심도 이야기했고요. 이런 편지를 보내고 대성동초등학교의 전화나 답장 정도 기대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뜻밖의 편지를 받고 감동하셨다는 진영진 교장 선생님이 먼 거리지만 방학 때 방문해 줄 수 있겠느냐는 뜻을 보내왔고, 감사하며 수락했답니다. 

  1970년대 후반, 본교에서 대학 시절을 보낼 때부터 좁은 땅이 섬처럼 분단되어, 동족이 대치하고 갈등하는 상황이 갑갑하기 짝이 없던 저로서는, 마산에서 런던으로 가는 꿈을 다시 떠올리며, 같이 초대받은 중등교사 아내(박정심)와 함께 승용차를 몰고 서울로, 경기도 파주로 갔답니다. 민간인통제선(민통선) 너머, 마침내 유엔사령부 공동경비구역(JSA)에 이르러 군인의 안내 겸 감시를 받으며 초청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안내를 맡은 교무부장 이상재 선생님은 대성동 마을역사관을 보여주었는데, 이 마을이 휴전협정으로  비무장지대 내부에 북한의 기정동 평화의 마을과 남한의 대성동 평화의 마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 대성동 마을은 유엔사령부 관할이라서 50가구 가량의 대성동 주민들은 제법 넓은 농지를 갖고 있지만 경작권만 있다, 이 마을에는 초등학교 외에 마트도 하나 없는 열악한 환경이라 밤낮없이 확성기 소리까지 들어온 온 주민들은 다른 곳보다 수명이 짧다, 이런 흥미진진하고 안타까운 얘기들을 들었습니다.

  남한의 이 대성동 평화의 마을에서 북한 당국이 직접 관할하는 기정동 자유의 마을은 불과 500m도 되지 않아 육안으로 빤히 보였습니다. 난생 처음 육안으로 보는 남한과 북한의 자연과 두 마을 모습에서는 오히려 분단의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잠시도 빠짐없이 옆에서 수행하는 청년 군인의 존재가 현실감을 느끼게 해 주었지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많은 외신기자들도 이 마을에 와서 보고는 중동의 군사분쟁 장면과 너무 다르게 평상시에는 평화로워서 오히려 놀란다 하더군요. 

  마을을 둘러 본 후, 인자해 보이는 진영진 교장 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의 환영을 받으며 들어간 대성동초등학교에서는 인사를 나눈 후, 20명의 교직원들께 우리 대학에서 준비해 준 기념품을 선물로 드리고, 몇 분께는 개인적인 선물도 드렸습니다. 김동구 이장님도 만나서 마을생활의 애환을 듣고, 심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기적의 숫자리딩』이라는 책을 선물로 드리니, 답례로 『경기도 DMZ 자유의 마을 대성동』이라는 귀한 책을 선물로 주시더군요. 농한기에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과 남북한의 축소판인 북한의 기정동 평화의 마을과 비교, 연구하는 논문이나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는 처음이라 설레는 경험이었습니다. 교장 선생님과 교사분들이 참관하는 가운데 3~6학년 20명을 대상으로 ‘세계 속의 분단한국에서 평화와 다시 하나됨(재통일)의 길 찾기’라는 주제였습니다. 매우 크고 무거운 주제지만, 선생님들과도 함께 고민하는 마음으로 얘기했답니다. 이 학교의 일반적 교육 여건은 대단히 예외적으로 좋은 편이라, 이 학생들 중 대성동 마을 주민의 자녀는 많지 않고, 파주시의 외부 지역에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와서 통학한답니다. ‘이 학교에 무엇이 가장 좋은가’ 학생들에게 물으니, 3학년부터 6학년까지 20명이 매년 무료로, 국내외 수학여행 하는 거랍니다. 대성동 평화의 마을에서부터 ‘마을공동체정신’을 잘 살려서 평화롭게 상생하는 통일한국과 세계를 만들어가자고 ‘파이팅’하며 마쳤습니다.

  선생님, 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유아반부터 이 교실 저 교실 돌아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마을 밖의 식당으로 나가 식사 대접하시겠다는 교장 선생님의 뜻을 고사하고, 학교 식당에서 선생님과 학생들과 함께 먹은 점심은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생애 가장 뜻깊은 ‘함께 밥먹기’ 중의 하나에 해당할 겁니다.  

  이번 8월 말에 정년퇴직하신다는 교장 선생님은 한국어, 영어본 ‘다큐+픽션영화’ 『비무장지대 대성동초등학교』 CD 두 개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이 학교 학생들이 만든 것인데, 전학 온 북한 친구와 진정어린 우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북한을 코앞에 둔 이 마을 어린이들에게 ‘통일’이란 휴전선 너머의 또래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노는 것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교장 선생님은 북으로 가는 마지막 역, 도라산 역까지 직접 안내하고 배웅해주셔서, 고뇌 속에 동시대 분단한국을 살아온 인간적 공감대와 깊은 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북으로 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내려오는 길에서는 북에서 남으로 자유롭게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을 보고, 임진각에 들러서는 휴전 당시 반공포로가 건너 온 후 지금까지 막힌 ‘자유의 다리’, 전쟁 후 달리지 못하고 주저앉아 녹쓴 철마(鐵馬)를 보고 대성동에서보다 더 깊은 분단의 상처와 세계사적 모순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매우 뜻깊은 휴전선 여행에서 돌아와 마산·창원에 살면서, 이번 방학 중에는 백두산 여행을 다녀 올 계획과 동료 교수님들과 남북한경제교육에 대한 연구과제를 갖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한 동안 한반도 전쟁과 평화, 지구상 마지막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분단체제와 그 통일을 화두로 안고 살아야겠습니다.  

 

< 글 : 경제금융학과 정성기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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