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철학자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하버마스의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그의 사상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학문적으로 뛰어나기도 하지만,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지침들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버마스의 이론은 의외로 매우 상식적인 수준에서 출발한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는데 있어서 언어가 중요한 매개점이라는 점에 착안한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우리의 사회적 관계를 맺어가는 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언어로 매개된 의사소통적 토론의 과정 속에서 모든 문제가 자유롭게 논의되고, 그 논의의 결과가 사회적 정당성과 타당성을 획득하는 사회가 바로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터잡은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하버마스가 보기에 현대사회의 문제는 '자본과 행정권력의 힘'이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힘'보다 더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것이다. 하버마스의 그 유명한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라는 표현은 바로 언어를 매개로 상징적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구체적 삶의 영역(생활세계)을 자본과 권력이 잠식해가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교육현실은 이러한 분석틀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비정년트랙의 교수, 교원정년 단축, 학부제, BK21, 누리사업, 국공립대 통폐합 등 교육부의 일련의 조치들은 교수, 학생, 교직원 등의 자유로운 토론의 결과라기보다는 행정권력의 폭력적 결단이었다. 특히 학부제와 BK21은 자본에 이득이 되는 학문만 살리자는 자본의 요구가 행정권력의 힘으로 관찰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버마스식으로 표현하자면, 자본과 행정권력에 의한 "교육현장의 식민지화"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하버마스의 주장을 응용하면, '교육적 대화마당'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것, 그럼으로써 교육에 있어서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지켜내는 것이다. '대학운영위원회'나 '등록금책정위원회'는 바로 대학의 교육문제에 있어서 의사소통적 구조를 확보하기 위한 훌륭한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위원회가 제대로 자기 역할을 다해 낸다면, 자본과 행정권력의 힘보다는 교수, 학생, 교직원, 학교재단의 자유로운 토론의 결과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정당에서 주장하는 '민중주도의 교육위원회' 역시 일국의 교육문제를 교육부 관료가 아니라 민중이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버마스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터 잡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또 다른 싸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학운영위원회'도 '민중주도의 교육위원회'도 대화와 설득으로 건설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화와 토론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점거, 삭발, 단식 등의 비언어적 투쟁을 해야하는 것이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