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 칼럼] 변종현 교수
[경남신문 칼럼] 변종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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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2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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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의 ‘정당매(政堂梅)’에 담긴 선비정신

  남명(南冥) 조식(曺植, 1510~1572)은 조선 중종과 명종 시절에는 재야 학자로서 이름을 떨쳤고, 사후에는 학문과 덕행이 높이 인정돼 선비정신을 실천하며 살아간 인물로 표상됐다. 남명은 성리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기보다는 자신의 심성을 잘 수양해 덕성을 함양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남명은 만년에 ‘경(敬)’과 ‘의(義)’를 강조하면서, 안의 마음을 밝게 하는 것은 ‘경(敬)’이고, 밖의 일을 결단하는 것은 ‘의(義)’라 하였다. 남명은 산림에 처했지만 선비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았고, 평생토록 수양과 성찰을 통해 안자(顔子)와 같은 삶을 꿈꾸었다.

  남명은 저술을 중시하지 않았고, 남아 있는 시도 200수가 안 되지만, 남아 있는 시들을 통해 남명의 정신세계를 살필 수 있다.

 


  남명은 산청군 단성면 운리에 있는 단속사(斷俗寺)를 여러 번 찾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절에 있는 ‘정당매(政堂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읊었다.

  寺破僧羸山不古(사파승리산불고) 절 부서지고 스님 파리하나 산은 옛 모습 아닌데.

  前王自是未堪家(전왕자시미감가) 전 왕조서 제 스스로 집안 단속 못하였네.

  化工正誤寒梅事(화공정오한매사) 조물주는 바로 찬 매화의 일 그르쳐서.

  昨日開花今日花(작일개화금일화) 어제도 꽃 피우고 오늘도 꽃 피우누나.

  고려 말기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낸 강회백(姜淮伯)은 고려가 망하자 지조를 지키지 않고 조선조에 벼슬하였다. 그런데 그가 단속사에 심은 매화는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있다고 하여 매화를 통해 강회백의 행적을 비판하고 있다.

  기구(起句)에서는 현재 단속사는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된 이후 부서진 상태로 있고 거기에 거주하는 스님들의 모습도 파리하다고 해 형편없는 사찰의 분위기를 그려내었다. 거기에 비해 ‘산불고(山不古)’에서는 사찰의 현재 모습과는 상관없이 늘 일정한 이법(理法)을 지니고 있는 자연의 영원함을 떠올리고 있다.

  승구에서는 고려왕조에서 정당문학을 지낸 강회백이 조선 태조 때 동북면 도순무사를 지낸 것을 비판하고 있다. 강회백이 단속사 뜰에다 매화를 심은 것은 매화의 지조를 본받고자 함인데, 강회백의 변절은 호된 질책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전구와 결구에서는 단속사의 정당매는 세인들이 바라보는 시각과 상관없이 어제도 꽃 피우고 오늘도 꽃을 피우고 있다고 했다. 매화를 심은 사람의 잘못된 행보로 매화도 추위에 얼어 죽거나 꽃을 피우지 못하거나 할 터인데, 매화는 어제도 꽃을 피우고 오늘도 꽃을 피워서 조물주가 일을 그르쳤다는 것이다.

  단속사에 강회백이 심은 매화나무는 죽었는데, 백년 뒤 그의 증손 강용휴(姜用休)가 다시 심은 것이 지금 남아 있는 매화라 한다. 남명은 어려운 시기에 선비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줬고, 시를 통해서는 현실인식과 선비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위 글은 경남신문 2017년 6월 26일(월)자 23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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