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도전 가운데 왜 사막마라톤이냐고 친구들이 물었다. 처음 대학생이 됐을 때 꾸던 꿈과 다른 현실을 살아가는 나를 보며 괴리감을 느꼈다. 취업 경쟁에 짓눌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길을 걸어가는 내가 비참해 보이기까지 했다. 새로운 도전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더 단단해지고 싶었다. 군 시절 책을 읽으며 4대 극지마라톤을 완주해야 주어지는 그랜드슬래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차근차근 준비했고, 드디어 첫 번째 도전으로 사하라사막마라톤에 참여했다.
이번 대회에는 듄이라고 불리는 모래언덕 구간이 많았다. 듄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첫째 날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며 달렸다. 꿈속을 내딛는 것 같았다. 하지만 40℃가 넘는 날씨와 높은 듄은 발에 무리를 줬다. 결국 3일차부터 무릎이 잘 굽혀지지 않았다. 발톱도 온전히 남아있지 않았다. 발톱 8개가 빠졌다. 무릎을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발목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4일차엔 발이 부어 신발조차 제대로 신기 어려웠다. 5일차 되는 날은 롱데이(Long-day)라고 부른다. 24시간 동안 82㎞를 달려야 한다. 5일차 경기 시작 4시간을 남겨두고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옆에서 멀쩡하게 걸어다니는 선수들을 보며 순간 포기해야겠다는 패배의식이 머릿속에 들었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서 달릴 수 있게 응원해준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들을 위해, 나를 위해 지금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단 한걸음이라도 더 가야만 했다. 남은 시간 동안 다리를 주무르고 스트레칭을 해서 다행히 경기 시작 30분을 앞두고 겨우 걸을 수 있게 됐다. 5일차에 밤을 새워가며 82㎞를 뛰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진통제 11개를 그 순간에 복용해야 했다.
한국선수는 모두 9명이 참가했는데, 처음 만났지만 서로를 가족처럼 같이 걱정해주고 응원해줬다. 같이 고생하고 의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완주했던 순간은 한약을 먹은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끝이 달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처음의 알량한 패기는 좋았지만, 대회 도중 많은 부상 악재로 너무 힘든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많은 것을 얻었고 한층 더 성장함을 느꼈다. 대회 참가자 114명 중 75등을 했다. 나쁘지 않은 기록 같지만 78등이 마지막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기권했다. 인생에서 엄청난 걸 찾기 위해 사막마라톤에 도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얻은 것은 있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 5일차에 앞서가던 선수들이 탈수 증세를 보이며 기권할 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일정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끝내 완주했다. 누구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자신이 원하는 어떠한 길을 가보는 것이 젊음이 아닐까.
<위 글은 경남도민일보 2017년 5월 31일(수)자 10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