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 기고] 변종현 교수
[경남신문 기고] 변종현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7.05.1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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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필의 궁류시(宮柳詩)에 담긴 풍자

  석주(石洲) 권필은 조선 광해조(光海朝)) 때 문인으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포의(布衣)로 일생을 마친 인물이다. 명나라의 문장가 고천준이 사신으로 왔을 때 영접할 문사로 뽑혀 이름을 떨쳤다. 시재가 뛰어나 자기 성찰을 통한 울분과 갈등을 토로하고, 시적 긴밀도가 높은 시를 써서 시의 수준을 높였다. 석주는 광해조 당시 권신들의 횡포를 풍자하는 ‘임숙영(무숙은 자)의 과거 합격 취소 소식을 듣고(聞任茂叔削科)’라는 시를 지었다.

 

  宮柳靑靑鶯亂飛(궁류청청앵난비)

  궁안 버들 짙푸르고 꾀꼬리는 어지러이 나는데

 

 


  滿城冠盖媚春暉(만성관개미춘휘)

  온 성안에 벼슬아치 봄빛 풍경 야단이네

  朝家共賀昇平樂(조가공하승평락)

  조정에선 태평성대 즐겁다고 축하하는데

 

  誰遣危言出布衣(수견위언출포의)

  그 누구가 위태로운 말 포의에게 나오게 했나?

 

  이 시는 광해군 3년(1611) 임숙영이 과거를 보면서 대책문(對策文)에서 척신(戚臣)의 무도함을 공박하는 글을 써서 과거에 합격했으나, 왕의 노여움을 사서 과거 합격이 취소되었다. 그러나 영의정 이항복의 무마로 병과에 급제하게 되었는데, 이 시는 그러한 일들을 풍자한 것이다. 기구에서는 궁안의 유씨(宮柳)들이 권력을 농단하고 있음을 풍자하였다. 궁안의 버들은 왕의 처남인 유희분과 후비(后妃) 등을 가리키고 있는데, 궁안의 버들이 짙푸르고 그 주변을 꾀꼬리들이 어지러이 날고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꾀꼬리는 권신들의 주변을 맴도는 조정의 벼슬아치들을 상징하고 있다. 승구에서는 온 성안의 벼슬아치들이 봄빛 풍경이 좋다고 야단한다고 하여, 당대 정치인들의 현실 인식을 문제 삼고 있다. 전구와 결구에서는 조정에서는 태평성대 즐겁다고 축하를 하는데, 그 누가 위태로운 말을 과거 보는 선비에게서 나오게 하였느냐고 묻고 있다.

  이 시는 일명 ‘궁류시(宮柳詩)’로 불리고 있는데, 이 시가 세상에 알려지자 광해군이 크게 화를 내어 출처를 찾던 중 조수륜(趙守倫)의 집을 수색하다가 이 시를 발견하였다. 석주는 광해군의 친국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 끝에 경원으로 유배가 결정되었다. 석주는 들것에 실려 동대문 밖을 나섰으나 발행하지 못하고 민가에 머물고 있다가 갈증이 심하여 마신 막걸리에 장독이 심해져 일생을 마쳤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광해군 때 정치 현실에 분노하던 석주의 시를 읽으면 지금 눈앞의 현실을 보는 듯 공감하게 된다.

<위 글은 경남신문 2017년 5월 10일(수)자 22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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