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아침숲길] 정일근 교수
[국제신문 아침숲길]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7.01.09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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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 새해, 계림에서 서성이다

  정유(丁酉)년 새해 새벽, 신라의 숲 '계림(鷄林)'을 찾습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지난밤에 경주시가 새로 만든 '신라대종'을 타종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돌연 취소됐습니다. 신라의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을 본떠 만든 종이어서 기대했던, 기다려온 신라대종의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대신 이 아침 계림을 걷는 일로 그 불편함을 대신합니다.

  저는 범종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데에는 '맥놀이'(Beat) 현상이 아닌 또 다른 무언가가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소리가 나아가서 끝날 때쯤 뒷소리가 앞소리를 밀어줘, 그 마지막엔 소리의 정수가 가장 붉은 피 한 방울로 또르르 맺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에밀레- 에밀레- 그 낮고, 깊고, 슬픈 소리가 신라 왕경의 17만8936호(戶) 가가호호를 찾아가 소리로 사람 사는 법을 가르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범종의 큰 울림이 개울을 건너고 담장을 넘어가면서 홀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들을 귀를 가진 자에게까지 정제된 작은 한 방울을 선물하는 것을 성덕대왕신종은 보여주었습니다.

  정유년 경주의 외곽에서 서성이며 신라범종 소리를 제 두 손바닥 위에 받아 모시고 싶었습니다. 하나, AI 사태로 소리로 세상일을 가르치는 일은 이미 부질없는 기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시대, 이미 소리를 잃었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새벽에 계림에 드니 숲의 맑은 기운이 온몸으로 밀려옵니다. 저는 오래된 숲에선 '정령(精靈)'이란 말의 실체를 느낍니다. 정령은 '만물의 근원을 이룬다는 신령스러운 기운'을 뜻합니다.

  계림은 신라 건국과 관련이 있는 숲입니다. 신라는 박, 석, 김씨 성을 가진 왕들이 다스렸습니다. 992년 동안 쉰여섯 분 왕의 나라가 신라였습니다. 그중에서 계림에서 김씨 왕의 시조인 '김알지'가 '출현'했습니다.

  알지의 등장은 서기 65년 8월 4일의 일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헤아려보면 무려 천 년에 천 년을 덧댄 1952년 전의 일입니다. 저는 지금 그 숲을 거닐며 무려 2000년 전의 이야기에 귀를 엽니다. 오래된 이야기에 시간이 더해지면 신화가 되는 법입니다. 신화는 숲과 함께 새벽이면 잠을 깨고, 밤이면 잠이 듭니다.

  65년 탈해왕은 밤에 금성(金城)의 시림(始林)에서 닭 울음을 들었습니다. '웬 닭 울음?' 잠을 깬 왕의 궁금함에 신하 호공이 시림으로 냉큼 달려갔습니다. 그곳엔 금빛 나는 작은 함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 밑에서 흰 닭이 울고 있었습니다.

  왕이 숲으로 직접 달려갔습니다. 왕이 함을 열자 용모가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습니다. 그 사내아이가 김알지입니다. 시림은 그때부터 계림이 되었습니다. 그날 하늘에는 자줏빛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탈해가 알지를 데리고 왕궁으로 돌아가자 새와 짐승이 다투어 춤추면서 반겼다고 합니다. 불행하게도 이 사내는 신라의 왕이 되지 못합니다. 알지는 탈해의 양자가 됩니다만 왕위는 물려받지 않습니다. 박씨 성을 가진 '파사'에게 왕위는 돌아갑니다.


  신화는 역사의 메타포로 읽을 수 있습니다. 신라의 왕권을 박, 석, 김씨가 가지게 되지만 박씨의 수세에 눌려 계림에서 태어난 알지는 후일을 도모했을 것입니다. 기회를 꿈꾸었을 것입니다. 그 꿈의 씨앗을 계림에 묻어놓고 기다렸기에 알지의 6세손 미추가 신라의 13번째 왕이 됩니다. 그 이후 신라는 김씨 성을 가진 38명의 왕을 가지게 됩니다. '전(傳) 미추왕릉'은 대릉원에 위치합니다.

  알지는 금빛 나는 함에서 출현함으로 신라를 '황금의 제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계림에 금빛 함을 가지고 등장한 것은 '금'을 가진 세력의 등장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계림에서 새로운 왕의 출현을 알리며 울던 그 '흰 닭'에 대해 골똘히 생각합니다. 왜 닭이 울었을까요? 왜 흰 닭이었을까요? 정유년에 저는 계림에서 흰 닭이 울어 알지의 출현을 예고했던 은유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저는 그 흰빛을 '소색(素色)'으로 이해합니다. 그 당시 흰 닭의 흰색은 '현대적 의미의 형광기가 가미된 백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검은색의 반대개념의 흰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소색은 무색(無色)의 상징입니다. 모든 색을 다 받아주는 색입니다. 그 흰 닭은 알지의 금빛을 받아 더욱 빛나게 하는 배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날 신라대종을 타종했어야 합니다. 계림에 등장한 흰 닭 이래 2000년, 3000만 마리 이상 살아있는 채로 묻혀버린 닭들의 영혼부터 위로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야 서기 65년에 우리에게 오신 그 흰 닭에 대해 미안함을 덜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새벽과 아침을 깨우는 소리가 사라져버린 '혼주의 시대', 이제 무엇이 우리를 깊은 잠에서 깨울 것인지 계림의 숲에 서서 참 아득해지는 시간입니다.

<위 글은 국제신문 2017년 1월 7일 (토)자 19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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