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 기고] 변종현 교수
[경남신문 기고] 변종현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7.01.0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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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

  올겨울은 예전처럼 삼한사온(三寒四溫)이 될 것이라 하니 그래도 추운 가운데 따스한 날이 더 많아서 지낼 만하겠다. 추운 겨울에는 봄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지내다보면 새로운 기대감으로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고려 중기에 김극기(金克己)는 ‘전가사시(田家四時)’를 지어 한국적 농촌 풍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김극기는 진사에 급제하고도 마흔이 넘도록 전가에서 생활했기에 ‘전가사시’에 나오는 인물들은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현실적인 인물들이다. 그는 이런 시를 통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농부들의 삶을 적극 긍정하고 있다. 다음 시는 농가의 겨울 풍광을 읊은 ‘전가사시, 겨울(田家四時, 冬)’이다.

  歲事長相續(세사장상속)

  농사일은 사뭇 이어지면서

  終年未釋勞(종년미석로)

 


  해 가도록 수고로움 못다 풀겠네

  板愁雪壓(판첨수설압)

  판자로 된 처마에는 눈 덮일 걱정

  荊戶厭風號(형호압풍호)

  지게문엔 바람소리 울릴 게 싫어

  霜曉伐巖斧(상효벌암부)

  서리 아침 산에 올라 나무도 베고

  月宵升屋(월소승옥도)

  달 뜬 밤엔 지붕 이을 새끼 꽈야지

  佇看春事起(저간춘사기)

  봄농사를 시작할 때 기다리면서

  舒嘯便登皐(서소편등고)

  파람 불며 언덕이나 올라봐야지

  이 시는 겨울철에 우리 농가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삶의 모습을 읊고 있는데, 비록 고려시대 농촌 풍경을 읊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수련에서는 농사일은 사뭇 이어져 한 해가 다 가도록 수고로움은 끝이 없다고 했다. 함련과 경련의 내용은 수련의 ‘수고로움 못다 풀겠네(未釋勞)’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다. 함련에서는 눈이 내릴 때를 대비해 판자로 된 처마도 손질해야 하고, 지게문 틈새로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문도 새로 바르고 문풍지도 달아 놓아야 한다. 경련에서는 서리가 내리는 새벽에는 산에 올라가 땔나무를 하고, 달이 뜬 밤이면 지붕의 이엉을 이을 새끼도 꽈야 한다고 했다. 미련에서는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봄농사 시작할 때를 기다렸다가 휘파람을 불면서 동산에 올라보는 것도 하나의 소일거리라 했다. 여기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쓴 ‘저(佇)’는 ‘몹시 기다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요즘은 여러 가지 상황들이 우리를 몹시 힘들게 하고 있다. 일찍이 맹자는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아니하고, 아래로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아니한 것(仰不傀於天, 俯不於人)”이 군자(君子)의 세 가지 즐거움(君子三樂) 가운데 하나라 했다. 이 어려운 시국에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덕을 갖춘 군자(위정자)의 출현을 고대해 본다. 그리하여 겨울날 동산에 올라 휘파람을 불면서 봄을 애타게 기다리는 농부처럼 살아가고 싶다.

<위 글은 경남신문 2017년 1월 3일 (화)자 22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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