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칼럼] 최동호 석좌교수
[세계일보 칼럼] 최동호 석좌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7.01.0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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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해야 솟아라

  일제 때 윤동주가 보았던 것처럼 짙은 어둠 속에 서 있는 대한민국 / 온갖 거짓 타파하고 다시 태어나 희망의 역사 꿋꿋이 펼쳐나가야


  격동하는 정유년(丁酉年) 새해를 맞은 마음은 착잡하다. 어디에서도 희망은 찾기 어렵고 권력 다툼을 위한 정쟁은 계속된다. 어찌 보면 새해 소망을 비는 것조차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아무리 보아도 정치인에게 그 희망의 실마리를 찾기는 힘든 것 같다. 그들 모두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들이 지닌 권력의 향배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이럴 때 일제의 감방에서 순절한 윤동주 시인의 순결한 시심을 되살려 보는 것은 극도의 혼란으로 앞길을 예측하기 힘든 우리의 마음을 진정시켜 줄 것이다.

  윤동주가 순절한 것은 광복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이었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 1917년 북간도 용정에서 출생한 그는 시 ‘참회록’을 쓰고 일본으로 갔으며, 일제에 의해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됐다. 밤이면 밤마다 거울을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아보자며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고 싶다고 했던 그는 자신의 몸을 던져 옥사했으며, 이를 통해 암흑기 밤하늘의 별과 같이 조국의 어둠을 밝혀 주었다. 언제나 국가를 위하고 민족을 위해 살겠다고 선언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렇게 결단한 지도자가 누구였느냐고 할 때 떠오르는 이름은 많지 않다. 윤동주는 말로 하는 애국자가 아니다. 연약하고 작은 목소리로 여린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노래하면서 자신의 소명을 지켜 사즉생(死卽生)의 길을 택했다.

  그는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이라고 했다. 이런 말은 주변에서 수없이 듣는 이야기이다.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런 말을 자주 한다. 부끄러움 없기를 소망하는 그는 뒤이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적었다. 커다란 것이 아니라 작은 것, 미세한 것의 움직임에도 귀를 기울인 것이다. 그것은 역사나 민족이라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윤동주의 괴로움은 작고 연약하고 힘없는 것으로부터 우러나오기에 오히려 그것은 역사의 근원을 움직이는 힘을 갖는다. 지상의 생을 받고 살아가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상상하면서 윤동주는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말한다. 이 시의 완성은 마지막 행의 극적인 비약을 통해 성취된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노래한 것은 지상의 고뇌를 천상의 고뇌로 확대시킨다. 죽어가는 여린 생명의 괴로움을 노래하면서 지상과 천상을 아우르는 상상을 보여주는 것은 윤동주의 시가 지닌 특징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데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직관한 것은 지상의 고통을 천상의 것으로 고양시키려는 의지를 뜻한다. 그 괴로움은 매우 깊은 곳에서 발원한 것이다.

  최근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국가적 시련은 이런 괴로움과 닿아 있다. 연약하고 작은 힘들은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기를 소망하며 촛불을 켠 것이다. 국가 권력에 비해 개개인의 힘은 연약하고 작고 초라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힘이 모여 거대한 바다를 이루고 하늘과 땅을 흔들어 역사를 전환시키는 역동성을 갖는다. 윤동주가 보았던 것과 같은 짙은 어둠 속에 오늘의 우리가 서 있다. 지금 한국인의 고민은 역사의 방향성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윤동주가 토로한 그대로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 어둠 속에서 희망의 길을 찾기 위해 박두진의 시 ‘해’를 읊조려 볼 필요가 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여기서 식민지시대의 절망은 희망의 앳된 얼굴로 승화되는 것을 본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해를 맞아 겸허한 마음으로 남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남들이 모르는 부끄러움을 한 줄이라도 줄이기 위해 살아야 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싶다. 밤새 짙은 어둠을 살라 먹고 말갛게 씻은 해가 솟기를 소망한다. 한국의 미래가 온갖 거짓을 타파하고 앳된 얼굴로 태어나 희망의 역사를 꿋꿋하게 펼쳐나가기를 기원한다.

<위 글은 세계일보 2016년 1월 2일 (월)자 26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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