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 시가있는 간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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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10.0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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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부근 - 정일근 교수

  여름내 열어놓은 뒤란 창문을 닫으려니

  열린 창틀에 거미 한 마리 집을 지어 살고 있었습니다

  거미에게는 옥수수가 익어가고 호박잎이 무성한

   뒤뜰 곁이 명당이었나 봅니다

  아직 한낮의 햇살에 더위가 묻어나는 요즘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일이나, 새 집을 마련하는 일도

  사람이나 거미나 힘든 때라는 생각이 들어

  거미를 몰아내고 창문을 닫으려다 그냥 돌아서고 맙니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여름을 보낸 사람의 마음이 깊어지듯

  미물에게도 가을은 예감으로 찾아와

  저도 맞는 거처를 찾아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 가을입니다. 모든 것이 익어가고 깊어지는 이 계절을 그대는 어떻게 느끼며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우리 주변은 여러 가지 정황들로 매번 시끄러운 순간들과 그런 일의 연속인 나날입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곤 하는, 그대를 포함하여 우리에게는 주어진 공간이 있고 또 그 속에서 저마다 해야 하는 다른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몰아붙이고 밀어내야만 세상일이 돌아가는 것은 아닐 텐데….

  잠시 숨 고르기를 하면서 시를 읽어 보았습니다. 미물인 거미에게도 거처를 옮겨야 할 시간의 기회를 주는 시인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함부로 몰아내지 않고 슬며시 돌아서는 시인의 자세를 그대와 우리는 지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꼭 맞는 거처를 찾아갈 때까지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는 일 또한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이 가을에는. ‘가을바람이 불어 오면 여름을 보낸 사람의 마음이 깊어지듯’ 다른 그 무엇과 그 누가 아니라 그대와 우리는. 정이경 시인

<위 글은 경남신문 2016년 10월 6일(목)자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원문 링크주소]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193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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