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신문 내 마음의 시] 정일근 교수
[농민신문 내 마음의 시]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07.27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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⑷홍서봉의 ‘이별하던 날에’

  이별의 아픔, 압록강 푸른빛마저 가리운다

  이별(離別)하던 날에 피눈물이 난지만지

  압록강(鴨綠江) 내린 물이 푸른빛이 전혀 없네.

  배 위에 허여 센 사공(沙工)이 처음 본다 하더라.

   - ‘이별하던 날에’ 전문 (청구영언, 1728)

 

  홍서봉(1572~1645)은 조선 중기의 문신입니다. 인조 때 영의정까지 지냈습니다. 그 영의정을 지낸 시기가 병자호란 후의 난세였습니다. 홍서봉은 청나라와의 화의론(和議論)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조선의 사직을 보전하는 데 애를 썼습니다.

  그 반대편에 오랑캐에게 굴복은 불가하다던 ‘조선의 지조’ 척화론(斥和論)자 김상헌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오랜 문우(文友)였으나 정치적 견해는 달랐습니다. 홍서봉의 화의론 이후 김상헌은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갔습니다.

  청나라와의 화의로 오랜 문우였던 김상헌과 소현세자·봉림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청나라로 떠나갔습니다. 홍서봉에게 압록강은 아픈 강이었기에 이런 슬픈 마음을 시로 남겼습니다. 아쉽게도 홍서봉의 시 이후 압록강에 대한 시가 많지 않습니다. 그건 분단이 이유일 것입니다. 지금은 압록강을 보려면 심양의 단동으로 가야 합니다. 중국 국경에서 누가 우리의 압록강을 보고 노래하려고 하겠습니다.

  이 시를 제가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이별하던 날에 피눈물을 흘렸는지 안 흘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뒤에 찾아가보니 압록강에 흘러가는 물에는 푸른빛이 보이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건 압록강에 피눈물이 그때까지 흘러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때를 지켜보았던 백발의 뱃사공은 그렇게 슬프고 아픈 일은 처음 보았다고 전하더라는 것입니다. 친구를, 세자를 압록강을 건너 청나라로 떠나 보냈던 홍서봉의 마음이 그랬습니다.

  심양을 다녀오는 길에, ‘붉은 동쪽’이라는 단둥(丹東)에 들러 압록강을 보고 왔습니다. 저에게는 1995년 이후 두번째 방문이었습니다. 강은 아직도 황해를 향해 여흘여흘 갔는데 중조(중국과 북한) 국경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도시는 관광형으로 경천동지했고, 중국쪽 압록강은 한국 관광객을 위한 하나의 상품이었습니다. 그들은 ‘남북의 분단’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씁쓸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압록강은 장장 803㎞ 길이로, 한반도에서 가장 긴 강이라는 것을. 단동의 원래 이름은 ‘안둥(安東)’이었는데 1965년에 개명했다는 것까지요.

<위 글은 농민신문 2016년 7월 18일(월)자 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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