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칼럼] 임을출 교수
[매일경제 칼럼] 임을출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07.0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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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달라진 위상, 독인가 약인가

  8·15 광복절이 다가오면서 북한의 대화, 평화 공세가 거세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제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우리와 미국을 향해 자신들에 대한 시각과 정책 전환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북한의 한층 강화된 자신감이다. `화성-10` 성공 발사를 자화자찬하고 핵 보유국임을 주장하면서 근본적으로 달라진 자신들의 전략적 지위를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 측은 `화성-10`의 대성공은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켓에 의한 주체적인 핵 선제타격태세의 완성으로 규정했다. 지난 7차 당대회에서 `항구적 핵 보유국`을 선언한 이후 북한은 달라진 위상을 적극 활용할 태세다.

  북한의 이런 변신을 지켜보면서 핵을 가진 북한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사실상의 핵 보유국이 된 북한을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앞으로 새로운 남북 관계 설정과 관련해 최대 이슈가 될 것이다. 북한 측은 "그 누가 인정하든 안 하든 우리는 소형화·경량화·다종화된 핵탄을 가진 핵 보유국이며 우리 식의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켓까지 장비한 당당한 군사대국"(6·30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성명)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스스로를 핵 보유국으로 주장하는 궤변을 늘어놨지만 북한을 결코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한국)와 국제사회의 일치된 입장"(7·1 통일부 대변인 논평)이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결국 자신들의 달라진 위상을 인정해달라는 북한과 절대 그럴 수 없다는 한국과 국제사회의 팽팽한 신경전은 상당 기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볼 대목은 이제 남북 관계는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이전처럼 군사적 긴장이 최고점에 이르면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곤 했던 남북 관계 패턴은 더는 볼 수 없을 듯하다. 북한 핵문제와 이에 따른 제재의 성격은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따라서 남북 관계는 단기는 물론 중기적으로 불확실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다. 이제 남북 관계는 우리나 미국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뿐 아니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같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라는 이중적 제어 장치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앞으로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한 의미 있는 진전을 보여주지 않는 한 우리가 독자적으로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를 원해도 추진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율적인 운신의 폭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국제 공조를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분위기를 이완시킬 수 있는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는 현실이다.

  가령 북한 측에서 8·15 광복절을 전후해 이산가족 상봉을 전격적으로 제안해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산가족 문제는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인도적 사안이며, 인륜에 관한 문제`라고 강조해온 우리 정부 입장에서 북측의 제안을 매정하게 거절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보인다. 국제 공조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남북한 당국 모두가 스스로 빠져나오기 힘든 깊은 딜레마에 갇혀 있는 듯하다. 양보는 곧 죽는 길로 비친다. 북한은 핵 고수, 우리에게는 압박 제재 외에 비상구가 없어 보인다. 특히 북한은 헌법보다 상위 개념인 당 규약에 핵 보유국 입장을 못 박아 북한 내에서 `비핵화` 논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했다. 비핵화라는 말을 꺼내면 해당 행위나 반당·종파 분자로 몰리기 십상이다.

  이제 북한에 핵은 체제 생존의 보루이자 동시에 엄청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사실상의 핵 보유국이라는 달라진 위상이 김정은 정권에 생존의 돌파구가 될지, 아니면 숨통을 조이는 괴물이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끝이 안 보이는 핵문제 앞에서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관전 포인트가 있다. 지금의 딜레마 국면은 위기이자 엄청난 기회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핵문제의 진전에 따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레짐이 해체되는 상황은 북한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고, 이는 곧 통일 초기 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핵문제로 인한 남북 관계의 긴 경색과는 별개로 우리 내부의 통일 역량을 강화하고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노력은 중단 없이 이어져야 한다.

<위 글은 매일경제 2016년 7월 6일(수)자 35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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