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기사] 박태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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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06.2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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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작가 이태준, 북한에선 정치선전 글쓰기에 몰두"

  박태일 경남대 교수, 1948∼1952년 발표한 22편 발굴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상허(尙虛) 이태준(1904∼미상)이 월북한 뒤로는 북한체제를 찬양하는 내용의 정론(政論)을 주로 발표하며 정치선동가로 활동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988년 해금 조치 이후 이태준 문학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지만, 북한에서의 활동은 소설집 '고향길'과 러시아 기행문 등 일부를 제외하면 구체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

  26일 학계에 따르면 박태일 경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최근 계간 '외국문학연구'에 실은 논문 '재북 시기 리태준의 문필 활동'에서 이태준이 1946년 월북한 이후 1948∼1952년에 쓴 글 22편을 발굴해 분석했다.

  유형별로 보면 현실 정치에 대한 주장을 선전하는 정론이 16편으로 대부분이었다. 인물평을 포함한 수필이 3편, 보도문이 1편이었다. '로동자 동무들의 작품을 읽고'와 '5월 9일과 영화 『백림 함락』' 등 2편이 그나마 문학·영화를 다룬 평론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후자는 평론의 형식을 빌려 소련의 위대함을 강변하는 정론에 가깝다고 박 교수는 밝혔다.

  '북조선의 찬란한 민족문화 발전', '세계평화 옹호를 위한 투쟁은 조국의 통일 독립을 위한 투쟁과 일치된다', '조국 통일 독립을 방해하는 미제의 음모를 분쇄하자', '누구를 위해 누구와 함께 싸울 것인가?' 등 제목만 봐도 그가 정치선전에 몰두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일성 장군의 초상화를 붉은 광장에서 우러러본 감격'이라는 제목의 수필도 모스크바의 발전상이 주된 내용이다.

  매체별로는 22편 가운데 17편이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기관지 '민주조선'에 실렸다. 평양 주재 소련대사관 기관지 '조선신문'에도 1편을 기고했다. 논문은 이태준의 글들이 주로 ▲ 북한체제 홍보·선전과 소련 찬양 ▲ 대남 통일전선 책략 지지 ▲ 미 제국주의와 이승만 정부 비방 등의 내용을 담았다고 분석했다.

  이태준은 1949년 '세계평화 옹호를 위한 투쟁은…'에서 "미 제국주의자의 음모", "북반부의 민주건설을 공고히 지키며 남반부의 구국항쟁을 승리적으로 완결" 등의 표현을 쓰며 선동한다. 대남공세 기구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결성을 앞둔 때였다. 한국전쟁 때 미군의 세균전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자 "지옥에 천 번도 만 번도 떨어질 짓을 서슴없이 계획"한다며 해리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을 비난하는 내용의 '트루맨은 지옥이 없음을 알고 있다'를 '노동신문'에 썼다.

  박 교수는 "예술문학보다는 정치적, 사회적 의제의 글이 대부분"이라며 "작가로서보다 적극적인 현실 정치 분자로서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그의 영향력과 상징성을 활용하고자 한 북한 중앙매체의 전략과 이태준의 노력이 상승적으로 이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태준은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까지 지냈지만,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부터 사상검증을 받았고 전쟁 이후 숙청당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글은 1952년 7월 20일자 '노동신문'에 실은 '세계평화이사회 특별회의의 결정들을 인민들 열렬히 지지'였다. 박 교수는 논문에서 "1952년 하반기 이미 남과 북의 경계가 확연해진 마당에 월북문인으로서 그가 지닌 상징적 효과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일선에서 물러서게 된 일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위 글은 연합뉴스 2016년 6월 26일(일)자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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