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칼럼] 안차수 교수
[경남도민일보 칼럼] 안차수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06.2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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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공동체의 잔치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야경의 장관은 라스베이거스였다. 하루 종일 사막과 황무지를 달려 어마어마하게 크고 컴컴한 후버댐을 지나자 멀리 황금색 아우라가 신기루처럼 손짓하는 게 아닌가. 도시로 다가갈수록 불빛은 화려했고 카지노가 밀집한 도심은 그야말로 대낮보다 밝은 불야성이었다. 뉴욕의 맨해튼과 중국의 상해의 야경도 화려함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이층버스에서 본 맨해튼의 야경은 월스트리트, 브로드웨이, 5번가, 타임스퀘어에서 쏟아지는 건물 조명과 디지털광고판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이 바로 이곳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든다. 황포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감상하는 상해의 야경 역시 잊을 수 없는 장관이다. 마천루에서 쏟아내는 현란한 네온 물결과 와이탄의 고급스런 조명이 어우러져 세계 최대 도시의 현대와 근대를 보여준다.

  멋진 야경을 심심찮게 구경했지만 내가 가장 사랑한 것은 가난한 유학시절 즐겨 찾던 조그마한 도시의 소박한 크리스마스 조명 축제였다. 겨울이 오면 차를 타고 1시간 거리의 마을에 도착해 공원에 있는 소박하고 예쁜 조명을 구경하고 돌아오곤 했는데 현재는 전국적으로 알려져 미국 10대 조명 축제에 해당한다. 조그마한 시골 오클라호마 치카샤(Chickasha)의 조명 축제가 전국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규모와 화려함이 아니라 축제의 본질, 즉 공동체 때문이다.

  치캬샤 조명 축제는 1992년 지역 주민 몇 명에 의해 시작되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위해 사회적·경제적 장벽을 허물고 모든 시민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제안되었다. '전구 하나의 불빛은 비록 미약하지만 모이면 우리 모두를 훤하게 밝힐 것이다. 이것이 공동체이다'라는 축제의 글귀가 생각난다. 축제를 만들 때 주민들은 3가지의 원칙을 고수하기로 약속했는데, '비용은 공동체가 책임진다', '선의와 공동체의식을 목표한다', '어린 아이의 눈으로 축제를 만든다'가 그것이다. 이 원칙에 따라 모든 축제의 준비는 주민의 몫이다. 350만 개의 전구를 이용해 마을의 공원에 추수감사절부터 새해 전날까지 한 달 넘게 트리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며 장식해서 유지해야 하는 엄청난 노력이다. 초등학생에서부터 90세 노인에 이르는 15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하여 이 모든 일을 도맡는다.

  주최측은 전기세만 하더라도 엄청난 이 행사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까? 축제의 원칙은 24년간 고수되고 있다. 성금, 후원금, 기념품 판매 수익 등 전적으로 자발적이고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 한 때 전기세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었으나 그럴 경우 더 많은 성금이 답지했다. 아무리 가난한 유학생이었지만 축제를 빠져 나올 때면 나도 모르게 10달러를 모금함에 넣던 기억이 있다.

  진주유등축제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유료화로 가닥을 잡고 있다. 진주유등축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축제이다. 진주성에서 바라보는 유등의 아름다움은 감탄의 대상이다. 야경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은 역사 속 하나가 되었던 위대한 운명 공동체의 이야기이며 그것을 잊지 않으려는 시민의 노력이다. 유료화는 축제의 본질인 공동체 정신과 동떨어진 것이며 함께 즐기며 기꺼이 손님을 맞이하는 시민의 자긍심에도 어긋난다. 축제는 공동체의식의 발로이며 함께 기념하고 나누어 먹고 마시는 즐거운 잔치가 아니던가.

  아이러니 하게도 치카샤 축제의 공원 크기는 진주성과 같은 5만 평 규모이다. 작년 진주유등축제의 유료관관객 수가 27만 명이라고 하는데 매년 이 숫자만큼 치카샤는 즐거운 마음으로 외부 손님을 맞이한다. 고작 인구 1만 5000명의 도시가 매년 기꺼이 해내는 일이다. 진주성이 왜군이 아닌 용감했던 우리 선조들의 후손으로 매년 꽉 차는 축제야 말로 진정 시민의 자랑이요 기쁨이 아닌가?

<위 글은 경남도민일보 2016년 6월 27일(월)자 11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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