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대학보] 특집 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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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06.0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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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죽어가는 시대’에, 인문학의 길을 묻는다

  특집 방담

  인문학이 ‘죽어가는 시대’에, 인문학의 길을 묻는다

  - 문과대 학과 학우들의 비정상회담

  대학에서 인문학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인구론’(인문계 졸업생 90%가 논다) 등 웃어넘길 수 없는 신조어들까지 생겨났다. 각종 매체에서 매일 같이 ‘인문학의 위기’를 언급한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프라임사업’은 지금도 뜨거운 감자다. 국가가 주도한 이 사업에 대학 구조조정이 본격화되었다. 그로 인해 문과대학은 더욱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갈 곳 없는 인문학의 길을 찾아보고 싶어 우리 대학 문과대 학생들이 모여서 ‘비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 사회학과 학우는 불참했음을 밝힌다.

  문과대, 그리고 전공

  나는 왜 나의 전공을 선택했을까? 전공에 대한 후회는 없을까? 이러한 서로를 알아가는 질문으로 회의는 문을 열었다. 회의 초반의 어색함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무거운 분위기를 깨고 철학과 학우는 당당하게 발언을 시작했다.

  철학과 : 제가 철학과에 들어온 가장 큰 계기는 철학과 사이트의 소개 문구였어요. ‘모든 학문에 관심을 갖는다.’라는 말이 저를 철학과에 오게 만들었어요. 그 한마디에 망설이지 않고 선택했죠. 그래서 폐과가 된 지금도 열심히 철학 수업을 듣고 있어요.

  국어국문과 : 저는 터울이 많이 나는 언니가 둘 있어요. 나이 차가 크다 보니 어릴 때부터 저는 혼자 놀게 됐고, 그때 책을 읽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졌고 문학에 애착이 생겼어요. 그래서 대학에 들어올 때 고민 없이 국어국문과를 선택하게 됐어요.

  영문학과 : 제가 영문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막연하게 ‘외국에 취업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외국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영어가 필수기 때문에 영어학과를 택했죠. 그리고 제가 외국에서 살아보았기 때문에 다른 과보다 제게 잘 맞고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심리학과 : 고등학교 때 학생 상담실에서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그 상담은 제게 상당히 큰 의미였어요.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하는 마음이 생겼고 결국 심리학과를 선택하게 됐어요. 여러 가지 세부전공 중에서 사람들을 치료하고 도움을 주는 임상심리를 하려고 해요.

  역사학과 : 고등학생 시절 다른 과목에 비해 역사 과목이 유독 점수가 높았어요. 그러다 보니 흥미가 생겼고 그대로 역사학과까지 오게 됐어요. 이렇다 할 거창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를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이 전공을 선택하게 만들었어요.


  대학의 목적이 된 그 이름, 취업

  대학이 지성의 상아탑인 시절은 옛이야기가 됐다. 대다수 학생의 유일한 목적은 취업이다. 문대생은 취업 앞에 한없이 작아진다. 정말 문과대는 취업으로 평가하는 대학구조정의 약자인 것일까. 문대생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주제인 만큼 회의장의 분위기는 본격적으로 뜨거워졌다.

  사회복지학과 : 문대생은 전공에만 갇혀 있어요. 저는 현재 취업을 한 상태인데, 제가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취업을 준비했다면 취업을 못 했을 거 에요. 더 넓은 시야로 전공을 넘어선 다양한 시도와 공부를 해야 해요. 대학만을 탓할 수 없어요. 사회는 청년실업이 심각한데 그 문제를 뒤로 한 채 인문학만을 강조할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들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의 태도 변화가 필수에요.

  문화콘텐츠학과 : 개인의 문제와 더불어 학교 측의 도움 또한 필요해요. 3, 4학년 쯤 되면 어느 정도 전공에 대한 생각이 잡히고 길이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저학년 때는 학생들이 어떤 진로를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선택할 때도 어려움을 많이 느껴요. 학교에서, 과에서 최소한의 방향을 잡아줬으면 해요. 그리고 취업에 필요한 실무적인 부분도 습득이 가능했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대학의 역할이 아닐까요.
 
  중국학과 : 대학교가 ‘취업사관학교’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취업을 원한다면 관련 자격증을 따고 기술을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죠. 인문학과라서 취업이 잘 안 된다는 것은 틀린 말이에요. 주변 상황보다 개인의 노력과 역량에 더 많은 원인이 있어요. 문과대의 취업률이 많이 저조하지만 오히려 위기는 기회에요. 이 기회를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철학과 : 인문대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학과에요. 인문학 한 가지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를 준비할 수밖에 없죠. 공대나 사범대는 진로가 명확하죠. 확실한 기술을 배워서 관련된 분야에 취직을 해요. 하지만 문과대는 아무리 전공 관련한 자격증을 따고 공부를 해도 취업하기가 많이 힘들어요.

  역사학과 : 대부분 대기업, 공무원 시험에서 인문학을 크게 다뤄요. 국어, 역사, 영어, 수리, 논술 등의 시험을 치는데 수리를 제외하면 모두 인문학이에요.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라고 할 수 있죠. 우리는 ‘중요한’ 공부를 하고 있어요. 우리 문과대생의 길은 정해져 있지 않아요. 큰 단점이지만 동시에 장점이에요. 스스로 길을 찾아가야 해요.

  문과대 총학생회장 : 경남대생은 대기업에 들어가기가 힘들다는 인식이 있어요. 적은 인원이지만 우리 대학 공대생들은 대기업에 입사하곤 해요. 하지만 문대생들은 ‘어차피 나는 서류에서 떨어지겠지.’하는 생각으로 지원조차 하지 않고 있어요.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패기가 우리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요.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생각

  우리는 ‘인문학’이라는 길을 걷고 있다. 어디쯤 걸어가고 있을까. 걸음이 더디진 않은지, 방향이 똑바르지 않은지 걱정이 많다. 흔들리는 인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두의 눈빛에 진지함이 묻어났다.

  문화콘텐츠학과 : 저는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지만 꼭 인문학만의 위기는 아니니까요. 어느 학과나 힘든 시기잖아요. 공대도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반복되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죠.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위기는 자연스럽게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문과대 학생회장 : 10년 전만 해도 고등학교에 이과보다 문과가 더 많았어요. 몇 년이 지나고 그 반대가 됐죠. 제가 1학년 때 문과대 학생이 3천 명 가까이 됐는데 지금 2천 명이 채 안 돼요. 인원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어요. 가장 큰 문제는 문과대 학우들의 참여율이 너무 낮다는 점이에요. 학교에서 특강을 비롯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문대생들의 반응이 미지근해요. 위기는 외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학우들의 의식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영어학과 : 대학교가 아닌 고등학교만 봐도 인문학의 위기가 심각해요. 제 동생이 고등학생인데 문과생을 대폭 줄이고 이과생을 늘린다고 해요. 한 마디로 우리 후배들이 점점 줄어드는 거예요. 인원이 적으면 힘이 약해지고, 그럼 언젠가 문과대는 문을 닫아야 할 때가 오지 않을까요.

  철학과 : 다들 아시다시피 철학과가 없어졌잖아요. 저는 운이 좋아서 철학과에 왔고 아직 배우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십대들은 철학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훨씬 적겠죠. 인문학을 할 수 있는 곳이 점점 사라져 가요. 갈수록 인간보다 기계를 배우라고 아이들을 몰아가고 있어요. 기술과 과학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이잖아요. 사람을 배우는 게 인문학이구요. 위기가 기회라는 말에 동의해요. 물질만능주의인 이 시대가 인문학이 다시 설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요.

  중국학과 : 저는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기라고 생각해요. 위기가 아닌 대학이 어디 있겠어요. 취업 걱정 없는 대학생이 어디 있겠어요. 문과대가 좀 더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만의 위기가 아니잖아요. 겁먹지 말고 자부심을 가졌으면 해요.
 

  대학, 학과,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회의가 끝나갈 무렵, 조용했던 처음의 분위기와 달라졌다. 모두들 하고 싶은 말이 넘쳐났다. 어디에도 꺼낼 수 없었던 두려움과 불안함, 그리고 기대와 자신감이었다. 각자 차분하게 건의사항을 이야기했다.

  국어국문학과 : 문대생들은 다른 단대 학생에 비해 왜 이렇게 기운이 없을까 싶을 때가 있어요. 씩씩하게, 자신 있게 살아갔으면 해요. 좀 더 쉬운 길을 찾으려는 성향은 독이에요. ‘공무원이나 해야지’하는 생각만큼 어리석은 건 없어요. 우리 각자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해요. 고칠 것은 고치고 정말 최선을 다한 후에야 ‘우리가 이만큼 노력했는데 사회가 도와주지 않는다’는 불평에도 힘이 실릴 수 있어요. 더 많이 요구할 수 있어요.


  심리학과 : 3학년인 저도 취업 때문에 많이 불안해요. 하지만 심리학을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즐거워요. 그것만으로 저는 이 공부를 하고 있어요. 문대생이 힘이 없다는 말에 저도 공감해요. 문대생들은 학과 특성상 내부적으로 많이 고민하고 걱정하죠. ‘통찰’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어요. 하지만 동시에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줘요. 그래서 저는 인문학이, 심리학이 좋아요.

  철학과 : 신문방송학과를 복수전공하면서 느낀 것은 인문학 공부가 분명 도움이 된다는 것이에요. 인문학이 필요 없는 곳은 절대 없어요. 당장 눈앞의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먼 미래를 보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해요. 현재의 직업들은 계속 없어질 거 에요. 그럴수록 사람을 공부하는 인문학의 가치는 올라가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생기겠죠. 불안해하지 말고 우리 길을 묵묵히 걸어갔으면 해요.

  영문학과 : 저는 문대생으로서, 영문학과생으로서 학교에 건의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프라임사업, 과교과 폐과 등으로 우리 문대생들이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국민이 없는 국가는 없듯이 학생이 없는 학교는 없잖아요. 학생들의 입장을 더 고려하고 의견에 귀 기울여주셨으면 좋겠어요.

  사회복지학과 : 저는 사회복지학과를 나와서 꼭 사회복지사가 되어야 전공을 살리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른 일을 해도 인문학을 쓸 수 있고 전공과 관련될 수 있어요. 하나의 국한된 분야만 고집하지 말고 다양한 길을 염두에 뒀으면 해요. 무한한 가능성의 인문학을 많은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요.

  문화콘텐츠학과 : 요즘 학생들은 대학을 졸업장을 따기 위해 다니는 것 같아요. 인문학의 위기든 위기가 아니든 우리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야하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에요. 그렇게 되면 사회 분위기에 상관없이 이겨낼 수 있을 거 에요. 학과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면 두려울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분명히 인문학이 다시 떠오를 거라 믿어요.


  사람을 향하는 학문, 인문학 人文學

  문대생은 ‘궁금한 것이 많은 학생들’이다. 심리학과는 마음이 궁금하다. 국어국문학과는 언어가, 역사학과는 역사가 무엇보다 궁금하다. 한 시간이 넘는 열띤 회의는 만족스러웠다. 각자의 궁금함을 공유했다. 다양한 학과가 모여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기에 모두 진지한 자세로 회의에 임했다. 공통적인 의견은 ‘위기가 기회다’는 것이었다. 인문학의 위기지만 아이러니하게 인문학 특강의 인기는 뜨겁다. 인문학 서적은 어떤 때보다도 많이 팔린다. 세상이 점점 더 빠르고 편리해지는 만큼 사람들은 기계가 아닌 ‘사람’에 갈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문학은 기회를 품고 있다.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현장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기술·과학이지만 그것을 만드는 사람을 바꾸는 것은 인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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