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기사] 최동호 석좌교수
[세계일보 기사] 최동호 석좌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06.0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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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적 극단의 시대, 인간 감정 다루는 시 어느 때보다 필요”

  1957년 전후 황폐한 시기에 유치환 조지훈 시인 등이 나서서 조직한 한국시인협회(시협)가 내년이면 창립 60주년을 맞는다. 문학이 독자들로부터 멀어지고 묻지마 살인 같은 극단적인 범죄가 늘어나면서 시민 정서가 황폐해질수록 시인들의 역할은 오히려 더 강조될 수밖에 없다. 어느 때보다도 문학의 힘이 역설적으로 더 필요한 시기에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협 41대 회장으로 지난 3월 취임한 최동호 시인을 서울 종로구 시협 집무실에서 만났다. 최 회장은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할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이 없어진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더 극단적으로 치달을 것”이라면서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극단의 시대에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시는 찰나적이고 충동적인 것을 넘어서게 해주는 힘을 발휘한다”고 역설했다. 그가 시와 더불어 향후 2년 동안 이끌어나갈 시협의 방향과 다짐을 들어보았다.

  ―취임한 지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많이 바빴을 것 같다.

  “시협 회장직을 맡으면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구상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역대 회장들과 만나 의견도 나누고, 취임 후 간담회에서 소개한 ‘세계시인대회’나 ‘남북시인대회’는 신중하게 검토하고 추진해 보라는 조언도 받았다. 사실 시인들은 행정적인 부분을 잘 모른다. 시협은 직책을 맡은 분들이 무급으로 활동하고 행정적인 일에 미숙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따른다. 시협이 오랜 역사를 지닌 조직이다 보니 전임 집행부와의 소통도 숙제거리다. 지난 두 달간 협회의 구성원 모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제 좀 안정이 되는 것 같다.”

  ―남북시인대회와 세계시인대회를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현재 어느 정도 진척됐나.

  “현재 관련 단체를 만나 의견을 타진 중이다. 지금의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으냐는 의견도 있지만 남북 청소년축구대회는 매년 열리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과 북에 축구라는 연결고리가 남아 있어 남북 청소년축구대회와 연계된 대회를 생각하고 있다. 세계시인대회는 두 가지 안을 고려하고 있다. 첫 번째는 2018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에 맞춰 평화와 화합을 위한 문화예술행사로 생각 중이다. 미국의 대표적 시인이나 노벨 수상자 등을 초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올림픽준비위원회 측에도 우리의 계획을 전했다. 두 번째는 아시아인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시인대회를 여는 것이다. 아시아시인대회가 현재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높다. 파주출판단지 쪽에서도 관심을 보여 MOU 제의를 받기도 했다.”

  ―이런 행사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단순히 문학행사로 보면 당위성이나 필요성이 약하다. 앞으로의 세계 기류는 기술정보에서 문화예술 쪽으로 한 단계 올라간다고 본다. 이럴 때 한국이 문화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해야 부가적인 문화를 창출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라는 작가 한 명이 창출하는 가치는 말로 정리하기 어렵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한강이 맨부커상을 받았는데, 이런 것들이 한국이 세계로 나아가는 발판이라고 본다. 지금은 K팝이라는 대중문화가 세계로 퍼져 있는데, 이것이 K컬처로 보다 넓게 확산돼야 한다. 그 시작이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시협 41대 회장으로서 가장 크게 방점을 찍는 부분은 어떤 지점인가.

  “역시 소통이다. 요즘 시가 어려워지고 대중으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이 있는데 그 벽을 허물고자 한다. 시는 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시를 알고 즐기면서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시협은 한국 순수문학의 본거지다. 내년에 시협 60주년을 맞아 우리 시의 정체성 찾기를 주제로 하는 세미나를 열고, 디지털 시대에 시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논의할 계획이다.”

  ―시가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가족사랑, 인간사랑, 시사랑과 같은 국민적 캠페인을 생각 중이다. 우리 시대가 소통이 잘된다고 하지만 SNS나 카카오톡으로 안 되는 더 깊은 내면의 소통이 필요하다. 그것을 시를 통해 나누면 극단적으로 분열된 이 시대 사람들이 인간성을 회복하고 친밀감을 느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현대인들은 편지를 쓰는 것도 어려워한다.

  “시를 어렵게 생각하면 끝이 없다.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천재적인 시를 쓰려다 보니 안 되는 것이다. 표현이 서툴더라도 본인이 시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표현들로 해봐야 한다. 시는 역설적이게도 공부를 많이 할수록 쓰기 어렵다. 지식이 많기 때문에 그렇다. 지식으로 쓰다 보면 시가 아니라 논문이 된다.”

  ―향유 주체인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우선이겠지만 정부에서 내건 ‘문화융성’의 기치는 어느 정도 체감이 되는가.

  “시협 회원들과 협조해 대중과 소통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지금 생각하는 것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시를 읽고 소개하거나 공연을 통해 친밀감을 높이는 것이다. 오는 11월1일 시의 날을 계기로 전국민 시쓰기 운동이나 SNS 등을 활용한 이벤트도 생각 중이다. 소통이 있어야 감동이 있고 감동이 사람의 마음을 바꾼다.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은 지표나 방향성 제시는 좋지만 이를 뒷받침하고 끌어나가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복지와 같은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해서 문화를 이끈다는 당위적인 명제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문화가 표류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같이 고민하고 풀어나갈 과제이지 문화는 윗선에서 일방적으로 지시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최근 강남역 10번 출구 묻지마 살인으로 시끄러웠다. 이런 스타일의 극단적 사회 범죄가 횡행하는 세태의 대안은 없는가.

  “극단의 시대일수록 시가 필요하다. 이제 이른바 ‘알파고 시대’가 도래한다는데, 인공지능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더 극단화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다 지배하고 자신의 역할이 줄어드니까, 자기가 없어지니까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극단적인 자극을 추구하게 된다. 그 공허를 채우지 못하면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그 반대의 패륜도 아무것도 아닌 세태가 될지 모른다. 이런 시대야말로 시의 효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청년실업이나 경기 불황으로 시대가 어렵다고들 말한다. 이 시대 시가 궁극적으로 어떤 위로를 줄 수 있는가.

  “고독하고 외로울 때 위안이 되는 것이 시다. 시는 빵이 아니다. 영혼의 양식이다. 육체적 결핍보다 영혼의 결핍이 사람을 더 결핍하게 만든다. 아무리 취직이 안 되고 어렵더라도 한 편의 시로 용기를 얻는다면 어려움이 아닐 수 있다. 시가 직접적으로 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시를 읽고 어떤 삶을 살아가겠다는 내면의 힘이 솟구쳐 나오게 할 뿐이다. 이 시대 사람들은 조금만 어렵고 힘들어도 쉽게 좌절한다. 이럴 때 시를 많이 읽는다면 영혼의 고뇌를 극복하는 힘이 나온다고 믿는다.”

  ―강단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평문을 쓰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시를 써온 것으로 안다. 시를 쓰는 기쁨과 고통은 무엇인가.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썼고 시를 위해 대학도 국문과에 진학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공부하다 보니 평론을 쓰게 됐지만 평생 시라는 끈을 놓은 적이 없다. 발표하지 않더라도 항상 시작노트를 채웠다. 시는 영원한 내 마음의 고향이다. 헤겔의 미학에 보면 좋은 시는 인생의 경험이 풍부한 노년에 쓸 수 있다고 한다. 단 그가 젊은 시절처럼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난 열정이 충분히 남아 있다.”

  ―창작에 시협 회장이라는 직무가 방해되지 않나.

  “방해된다. 하지만 일 자체에만 함몰되지는 않는다. 이런 일들도 나에게 시를 쓰는 에너지가 된다고 생각한다. 갈수록 시가 더 좋아진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목표다. 중용에 나오는 ‘천하지성(天下至誠)’이라는 말을 요즘 들어 곱씹는다. 천하에 지극히 성실하면 능히 사람의 성(性)을 다해 물건의 성(性)까지 다할 것이요, 나아가 천지와 하나가 되는 그런 경지 말이다.”

<위 글은 세계일보 2016년 6월 1일자(수) 10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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