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인터뷰]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
[국민일보 인터뷰]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04.2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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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난 굴복 않는다’는 메시지 계속 던질 것”

  “김정은(북한 노동당 제1비서)은 ‘나는 굴복하지 않는다. 나는 비타협이다’라는 메시지를 스스로와 아랫사람에게 계속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물리적 도발로 이어지고 있고요. 이런 상황이 걱정됩니다. 앞으로도 도발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근혜정부 첫 통일부 장관으로 2년간 일했던 류길재 전 장관은 지난 15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젊은 지도자는 자신이 약하다, 경험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거 같다”면서 불안한 한반도 상황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3월 퇴임 이후 언론과 첫 인터뷰를 가졌다.

  -4·13총선 결과에 놀라지 않았나. 앞으로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칠까.

  “민심이 많이 좋지 않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여소야대로 정부의 대북정책이 의회 지지를 받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순 있지만 크게 달라질 건 없다고 본다.”

  -선거 직전 해외주재 북한 종업원의 집단 탈출이 있었다.

  “탈북자는 신변안전 문제가 있어 비공개가 역대 정부의 일관된 원칙이었다. 이번엔 다 드러나 북한 내 가족에 좋지 않을 거 같아 우려된다. 탈북자 공개는 신중해야 한다.”

  -엘리트 탈북이어서 대량 탈북으로 이어질 거라는 전망이 있는데.

  “2013년 말 장성택 숙청 여파로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탈북했다. 북한 엘리트층에 대한 통제도 강화됐다. 특히 해외에 나가 있는 이들에 대한 당국의 송금 요구 수준이 높아졌다. 외화벌이 목표치를 맞추기 어려워지니까 그런 (탈북) 흐름이 있다. 김정은 정권 하에서는 해외로 나가는 인력이 제한돼 있어 대량 탈북 여건 자체가 조성돼 있지 않다. 체제 불안정이나 붕괴로 보는 것은 좀 더 관찰하고 평가해야 한다. 아직 그런 단계는 아니다.”

  -최근 대북제재가 탈북에 영향을 미쳤나.

  “북한은 2006년(1차 핵실험)부터 많은 제재를 받고 있어 당장 벌어진 현상과 연결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70년 동안 극도로 폐쇄된 나라다. 새로운 제재를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금방 효과를 나타내기는 어렵다.”

  -대북제재의 열쇠는 결국 중국이 쥐고 있는 거 같다.

  “그렇다. 북한은 중국과의 접경지역에 시장을 열고 있다. 시장이 활력을 갖고 굴러갈 수 있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중국과의 교역 덕분이다. 공식 무역이건 비공식 무역이건 간에 중국의 물자가 들어오기 때문에 북한의 시장이 돌아간다. 그래서 중국의 대북제재 참여가 핵심이다. 중국 정부도 의지를 갖고 있다고 본다.”
 
  -그럼 중국은 북한을 어느 수준까지 압박할까.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미국과 갈등을 원하지는 않지만 미국이 원하는 판으로 가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북한이 자꾸 도발하면 미국의 사드 배치와 MD 구축에 탄력을 주는 만큼 중국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북한이 협조적으로 나와야 대미 관계에도 도움이 된다. 현재 미·중·북 3자 관계는 교착 상태다. 중국은 북한을 몇 년간 압박해 왔으나 잘되지 않았다. 계속 압박하면 북한은 완전한 고립상태에 빠지게 된다. 중국은 북한이 자기 통제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우려해 수위를 조절할 거다.”

  -김정은 정권이 제재로 변화될 것으로 보나.

  “국제사회 사례로 볼 때 제재로 인해 정권이 변화된 예는 없다. 제재가 일상화될 경우 제재의 전열이 흐트러지게 된다. 국제사회 제재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정책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다. 따라서 제재만 가해서는 안 되고 다른 방안도 생각해 봐야 한다. 압박과 대화, 두 트랙을 모두 가져가야 한다. 지금은 압박국면이니 제재를 가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화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야 한다. 봉쇄를 통해서 북한 체제를 바꾸겠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다. 이건 더 힘들다. 근대사에서 강대국의 압박을 받아서 체제가 바뀌는 경우는 없었다.”

  -북한은 어떻게 나올까.

  “예전에 원로 정치학자께서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을 전문적으로 틀리게 보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웃음) 증권사 애널리스트들과 같다. 북한이 무슨 일을 벌이면 그건 왜 이렇게 했다고 설명할 수는 있지만 예측하기는 어렵다. 김정일 정권까지는 일종의 패턴이 있어 김정은 정권보다 예측이 쉬웠다. ‘도발→위기→대화→타협→도발’이다. 일종의 밀고 당기기다. 2009년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화되고 대남정책에 개입한 뒤로는 알 수가 없다. 외부로 보내는 협박이 아버지 때보다 세졌다. 지난 1월 4차 핵실험 이후 말의 위협이 강해지고 있다. 2010년 천안함, 연평도 도발과 작년 지뢰도발이 있었다.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고 벌어진 일들이다. 한반도 상황이 불안해지고 있다.”

  -터닝 포인트(전환점)는 없나.

  “북한이 협상국면으로 가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대화가 있어야 한다. 미 오바마 정부도 대선을 앞두고 있어 대화에 나서기 어렵다. 그나마 미국에 새로운 정부가 등장하면 계기가 될 수 있지만 현재 유력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되든 대화가 이뤄질지 우려스럽다.”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북한은 핵을 비롯한 주요 문제를 미국과 풀려고 한다. 김대중, 노무현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북 대화는 북한에 보조제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드는 핵심적인 키는 미국이 갖고 있다. 남북문제에 있어서 ‘불편한 진실’이다. 하지만 핵 문제는 누가 풀든, 빨리 푸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이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보조적이든 주도적이든 중요하지 않다. 실용적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 입장에서는 북한을 비핵화 트랙으로 갈 수 있도록 하고, 국제사회로 나오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현 정부 내에서 남북관계가 달라질 가능성은 없나.

  “압박국면이 상당 기간 갈 것이다. 북한도 굴복하지 않을 거다. 앞으로 2년 내에 남북관계가 대화국면으로 가긴 어려울 것이다.”

  -재임 중에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김정은 정권에 진정성이 없었다. 밖에서는 우리 정부가 돌파구를 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하는데, 노력 안 하는 정부는 없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는 구상을 갖고 출발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아쉽고 반성할 부분이 많다.”

  -현재 김정은 정권은 어떤 상황인가.

  “시장을 내버려두고 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시장 통제와 완화를 반복했다. 김정은은 시장을 그대로 두고 인민들에게 ‘알아서 먹고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농촌에서도 가족단위 운영으로 식량 생산이 늘고 있다. 일정 부분만 정부에 내고 나머지는 시장에 내다 팔 수 있어서 식량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다. 과거와 같은 경제난은 겪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장 활동을 통해 먹고살지 못하는 집단이 생길 수 있다. 북한판 양극화가 나타날 수 있다. 방임형 경제가 돌아가고 있는데, 이것이 일종의 김정은 체제가 되는 것이다. 체제 불만이 과거보다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북한의 체제 유지에 위험이 되지 않을까.

  “당국에서 통제하지 않는 경제, 즉 비공식 경제가 늘고 있다. 시장 경제도 아니고, 시장화가 점점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식 시장경제로 가고 있다는 견해가 있다.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분화, 다양화되고 중요해지게 된다. 그런 것들이 내부적으로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변화는 내부 동력에 의해 생긴다.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 정권이 붕괴한다는 것이 아니고 시장화가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화가 당장은 김정은 정권에 도움될 수 있지만 요구가 점점 분화, 다양화될 수 있다. 정권 차원에서는 요구를 받아주든가 억압하든가 해야 한다. 여러 변화의 동인을 좀 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 긍정, 부정의 시각에서 보지 말고 변화의 씨앗을 품어가고 있다는 있는 그대로를 봐야 한다.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는 뒷얘기를 붙이지 말고.”

  -집권층 내 문제는 없나. 김여정이 2인자라는 얘기도 있다.

  “김여정이 김정은 동생이니까 2인자라고 볼 수도 있지만 북한에서 2인자는 의미가 없다. 철저하게 지도자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을 몰아주는 체제다. 북한 내부에서 2인자라고 하면 조만간 숙청될 것이다. 조언자가 될 수 있을지라도 우리 식의 2인자라고 표현할 수 없다. 김정은 정권이 지금은 확고하지는 않지만 상당 부분 자기 체제를 만들어가고 있다. 시스템과 사람들을 자기 식으로 물갈이하고 있다. 김정은이 고모부인 장성택 등을 숙청한 것은 백두혈통이 아닌 곁가지를 친 것이어서 정권이 강화된 것으로 봐야 한다. 김정은 정권의 색깔과 특징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김정은 통치의 특징은 뭔가.

  “과거 김정일은 측근들의 의견을 듣고 조율하는 과정이 있었다. 이에 반해 김정은은 자의적이고 때론 즉흥적인 점이 눈에 띈다. 연출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아 김정은의 아마추어적인 생각이 북한 정책에 투영되고 있다.” 

  □류 前 장관, 작년 3월 퇴임 후 언론과 첫 인터뷰

  인터뷰는 류길재(57) 전 통일부 장관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 북촌로 북한대학원대학교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15일 오후 3시에 시작해 2시간 정도 진행됐다. 현재 북한이 처한 상황과 핵 문제 등에 대해 전문가다운 폭넓은 식견을 과시했다. 인터뷰를 막 하려는데 한약이 택배로 배달돼 왔다. 누가 보냈는지를 묻자 장관 시절 통일문제에 관심이 컸던 고등학생이 편지를 보내온 일화를 소개했다. 직접 답장을 써 부쳤더니 나중에 대학 한약학과에 입학한 이 학생이 고맙다면서 보약을 지어 보내왔다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류 전 장관은 퇴임 이후 통일문제에 더 천착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통일은 우리에게 이로움을 주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통일은 반드시 이뤄야 한다”면서 “앞으로 우리의 통일태세를 갖추는 데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고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북한연구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지난 대선 때 국가미래연구원에 참여해 박근혜 후보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입안에 기여했다.

<위 글은 국민일보 2016년 4월 20일 (수)자 16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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