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칼럼] 안차수 교수
[경남도민일보 칼럼] 안차수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04.1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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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선거와 석고대죄

  정치·민주주의 본질 사라진 최악 선거…투표로 '약속'지키고 '정치'실현해야

  최악의 선거다. 선거구 획정도 하지 못하고 선거가 시작되었으며 이슈가 무엇이지 모른 채 투표할 판이다. 정당의 공천과 집안싸움에 매몰되어 시끄러우면서 내용이 빈 깡통선거다. 표를 구걸하기 위해 무릎 꿇고 큰절 올리는 읍소와 '회초리로 때려 달라'는 석고대죄만 남은 선거다. 정치와 선거의 본질은 사라졌고 오직 살아남기 위한 본능의 몸부림을 마주하는 유권자의 마음은 착잡할 뿐이다. 안하무인이던 정치세력이 선거철만이라도 권력의 가면을 벗고 시장을 돌며 거리에서 고개 숙이는 것이 그나마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민얼굴의 솔직함과 친밀함을 인간적으로 보는 것은 정치와 선거에 대한 오해이다. 정치와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기차가 궤도를 한참 벗어났기에 그 출발역을 다시 돌아본다.

  이코노미 즉 경제의 어원이 되는 그리스어는 집이다. 시민이 노예를 통해 집을 조직적으로 운영하는 기술을 뜻하는 것으로 경제란 물질생활을 담당하는 개인의 공장 혹은 농장 같은 집을 꾸려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에서 집은 사적영역으로 먹고 마시며 때론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동물적 본성의 공간이다. 이런 시민이 국가와 같은 공적 영역에 모이면 개인 공간인 집과는 다른 행동을 요구받는데, 정중하게 정치 공동체인 폴리스의 공동선을 위한 인격의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 라틴어 페르소나의 원뜻은 고대 연극배우가 착용하는 가면을 뜻한다. 공적 영역에서 행위주체인 시민이 인격의 역할로 소통의 연기를 위해서 가면을 쓰고 행위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가면을 벗어라'라는 의미는 우리에게는 부정적인 의미이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가면을 벗겨내 버리면 권리와 의무가 없는 민얼굴의 개인인 자연인이 남게 되며 정치적으로 무의미한 존재가 된다. 정치가 태생적으로 공공적 성격을 갖는 것은 혼자가 아닌 공동의 과정이며 사람들 앞에 드러냄의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개인이 혼자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적인 자연적 공간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자유롭게 생각하고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고유하고 신성한 인간적인 일이었던 셈이다.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국정교과서, 위안부 협상, 개성공단 폐쇄,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배치 추진, 테러방지법에 대한 무수한 논란은 선거가 다가오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대신 표를 구걸하려는 민낯의 개인들이 거리를 점령했다. 정치가 개인의 영달과 동물적 본능 추구가 아니라면 선거 기간만이라도 인격의 페르소나를 통해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론 과정과 영역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는다. 학생들을 태운 채 가라앉은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어떻게 침몰했는지 진실에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를 잊지 않고 약속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인격체의 얼굴을 한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진실을 인양하고 공동체의 슬픔을 치유하는 우리의 의지와 참여는 지극히 인간적이며 이것이 바로 시민의 정치행위다. 최악의 선거에 이슈는 분명하다.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약속은 투표이다.

<위 글은 경남도민일보 2016년 4월 11일 (월)자 11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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