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03.1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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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면 무엇이 그렇게 절실하겠는가?

  인공지능 로봇 진화하면 일자리 감소

  실업률 상승일로 청년층 미래 더 암울

  과학의 진화와 생계의 문제 사이 고민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은 끝났다. 대국의 수보다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아무튼. 그 결과 미래부가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래창조과학부’란 정부부처가 뒤늦게 상상하지 못한 ‘미래’에 화들짝 놀랐던 모양이다. 인공지능시대를 위해 예산을 투입하고 ‘전담팀’을 만든다고 한다. 결국 이번 대국의 실질적 승자며, 알파고의 주인인 ‘구글’의 값어치를 높여주는 호들갑이 이어지는 것 같아 씁쓰레하다.

  언론학에 ‘로봇저널리즘’이란 말이 있다. 이미 우리나라도 로봇이 야구 기사를 쓰고 있다. 페이스북 ‘프로야구 야구로봇’이란 계정에서 로봇이 쓴 야구기사를 읽을 볼 수 있다. 기계인 로봇이 사람의 자리에 앉아 기사를 쓰는 모습은 오래지 않아 흔한 풍경이 될 것 같다. 기자들의 전유물 같은 기자실에 기자 대신 로봇이 상주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외국은 더 빠른 진화를 보이고 있다. AP통신은 기업실적발표 같은 단순 경제기사는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에게 맡겼다고 한다. LA타임스는 기사작성 프로그램 로봇 ‘퀘이크봇(Quake Bot)’이 신분증을 달고 근무하고 있다.

  필자의 사회부 수습기자 시절을 생각하면 상상조차 못 했던 ‘신세계’다. 기자들이 새벽부터 종합병원과 경찰서들을 일일이 돌며 사건사고를 챙기던 이야기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기사는 발로 쓴다’는 비유는 ‘기사는 로봇이 쓴다’는 말로 바뀔 것 같다, 인공지능이 모든 정보망을 장악해 기사를 장악한다면 ‘특종’이니 ‘단독’이니 하는 기사는 사람기자의 몫이 아닐 것이다.

  오는 25일부터 시작되는 통영국제음악제에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의 연주회 입장권을 구입해 놓고 설레고 있다. 머지 않는 미래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보다 뛰어난 로봇의 연주회장에 앉아 있을지 모르겠다.

  이미 진행된 현실과 예견가능한 미래에 ‘사람의 자리’는 어딜까? 지금은 인공지능에 환호하지만 앞으로 사람이 일하던 5만개 이상의 직업을 빼앗아 간다고 하는 경고를 경계해야 한다. 더구나 바로 지난달의 청년실업률이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하지 않았는가. 지난달 15~29세 청년 실업자 수는 56만 명으로 청년실업률은 12.5%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달에 대비해 7만6000명 증가했다고 한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지 못하는 현실에 인공지능 시대의 상상을 펼치는 것은 역설적으로 청년의 미래는 더욱 암울하다는 말이다. 노동력을 필요로 현장마저 로봇에게 내준다면, 산업수도를 자처하던 울산의 미래는 바람 빠진 풍선 꼴일 것이다.

  ‘로봇’(robot)이란 말은 1920년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펙의 희곡작품 ‘로섬의 만능로봇’에서 처음 사용됐다. 로봇은 체코슬로바키아어 로보타(robota)라는 말로 ‘노예’라는 뜻과 강제노동이라는 뉘앙스가 들어있다. 더구나 그의 희곡은 ‘인간의 지나친 과학문명과 기술의 발달이 인류를 멸망시킬지도 모른다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카롤 차펙의 예언은 이미 적중했다. 내가 상상하는 미래에 지금 내 자리는 없다. 내 강의는 온라인 강좌인 ‘무크’를 전담하는 로봇이 가져갈 것이다. 독자들이 로봇의 시에 환호하는 시대가 올 것이니 말이다. 카롤 차펙의 인류 멸망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밥이나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계의 고민이다.

  솔직히. 나는 이 문제의 답을 모른다.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인공지능 로봇의 배터릴 빼자고 했다. 지금은 그것이 정답일지 모르겠다. 청년이 일하고 밥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 일 말고 무엇이 그렇게 절실하겠는가?

<위 글은 경상일보 2016년 3월 18일 (금)자 19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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