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02.19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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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푸스에서 후회했다

  무지로 인해 보지 못하는 세계 많아

  돌아가 무엇을 봤다 말할 수 있을까

  뒤늦게 드는 생각에 자책감 몰려와

  네팔 ‘담푸스’에서 편지를 보내려했습니다. 그 무렵 바쁜 일정이 겹쳐 건강에 무리가 왔었습니다. 그건 히말라야가 제 편지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말의 다름 아닐 것입니다. 늦은 편지와 인사에 대해 이해를 청합니다.

  히말라야를 꿈꾸거나, 히말라야를 찾아간다면 ‘ABC’란 말을 자주 듣게 될 것입니다. ABC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의 준말입니다. 안나푸르나(1봉 해발 8091m)는 네팔 히말라야 중부에 있는 연봉인데, 1, 2, 3봉이 솟아 있습니다. 그 연봉을 따라가는 길이 세계적인 히말라야 트래킹의 명소입니다.

  그 ABC 트래킹의 시작점을 대부분 ‘담푸스’로 잡습니다. 이번에 제가 참여한 대학의 ‘네팔지진피해봉사단’이 다녀온 지역의 하나입니다. 담푸스의 랜드마크는 ‘마차푸추레’(해발 6,993m)라고 생각합니다. 담푸스에서는 마차푸추레가 한 눈에 다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이 숨이 막힐 듯 감동적입니다.

  마차푸추레는 7000, 8000m급 산들이 다투듯 솟아있는 히말라야 산맥 2400km에서는 미미한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네팔인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산입니다. 네팔인은 어느 원정대에게도 마차푸추레의 등정을 결코 허가하지 않습니다.

  마차푸추레는 네팔말로 ‘물고기의 꼬리’라는 뜻입니다. 두 개의 봉우리가 물고기 꼬리 두 개가 겹쳐져 있는 형상입니다. 여러 해 전에 담푸스를 다녀온 한국의 동시 작가 김미희씨는 그 광경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신이 던진/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 한 마리// 네팔 사람들이/ 놓아주지 않아/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다.’

  봉사단이 담푸스에 도착했을 때 마차푸추레가 제 모습을 다 보여주며 우리를 환영해주었습니다. 전날까지, 아니 아침까지 구름이 잔뜩 끼어있어서 마차푸추레를 볼 수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기우였습니다. 봉사단이 봉사활동을 다 마칠 때까지 의연하게 네팔인들이 숭앙하는 ‘신의 산’은 제 모습으로 제 자리를 지켜주었고 배경이 돼주었습니다. 저는 사람의 일을 묵묵히 지켜보는 산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봉사단 일부는 담푸스에 온 김에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한국인의 많은 사랑을 받는 오스트레일리안 캠프(해발 1920m)로 떠나고, 저와 대학생 몇은 담푸스 롯지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일행들이 떠날 준비를 하자 금세 구름이 덮여 마차푸추레는 자취를 감춰 버렸습니다. 별과 유성우가 비처럼 쏟아지는 밤을 기대했는데 허망한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일출에 만날 황금빛 마차푸추레의 꿈까지 그 구름에 묻혀버렸습니다.

  그 밤에 그 때까지 네팔에서 본 아픈 풍경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제가 본 풍경 속 숨은 상처가 주마간산이었는지 후회됐습니다. 상처에 대한 치료가 아닌, 봉사의 목적에 시간을 다 보냈다는 자책감이 밀려왔습니다.

  헬레나 노르베지-호지의 ‘오래된 미래’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우리의 무지-감각과 개념화를 통한 세계 경험-가 모든 것이 분리되어 있고 항구적인 것으로 보이는 ‘일상적 세계’ 너머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고 경고했습니다. 돌아가 저는 무엇을 보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때서야 진정으로 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깨어 별 하나 보이지 않는 히말라야 밤하늘을 바라보며 히말라야만을 꿈꾸던 그 시절을 떠올려 봤습니다.

  저는 준비해간 노트에 손전등을 밝히고 이렇게 적었놓았습니다. ‘히말라야 설산고봉 향해 올라갈 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 찾아가다 보니 그 높은 산들 한없이 낮아져 보이지 않았다.’ 늦은 인사 드립니다. 나마스테!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을 경배합니다.

<위 글은 경상일보 2016년 2월 19일 (금)자 19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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