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김용복 교수
[한국일보 칼럼] 김용복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01.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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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청원 길거리 서명한 대통령

  총선을 앞둔 야권의 정계개편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탈당, 창당, 영입 등의 기자회견에서 빠지지 않는 ‘민심’이 그들만의 잔치에서 남용되고 있는 사이에, 좀 비상식적인 그러나 심각한 일이 여당에서 진행되고 있다.

 

  최근 보도된 두 가지 뉴스는 그 동안 버티어온 한국의 정치적 민주주의가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나,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1,000만인 입법청원에 서명하는 퍼포먼스를 벌인 것이다. 경제단체와 기업인들이 주도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것도 그 중립성에 있어서 문제가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최고 권력자가 그 많은 정책수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거리 서명운동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여당은 국회에서 과반수를 넘은 단점정부(여대야소)를 이끌고 있는데도 말이다. 본래 정치는 경쟁과 갈등을 전제로 해 여야간 설득과 협상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 동안 박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국회와 야당을 비판하고 압박해 왔다. 이제는 국회를 우회하는 서명운동을 통해 사회적 압력을 유도하는 포퓰리즘적 수단을 동원하려는 모양이다. 포퓰리즘은 원래 정상적인 정치과정이 힘들 경우에 직접 국민에게 호소하는 정치전략이다. 거대여당의 대통령이 야권의 지지부진함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정치적 절차를 무시하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그 시간에 야당대표를 만나 설득하고 대화하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더 호소력이 있을 것이란 생각은 왜 안하는 것일까. 대통령의 리더십이 설득의 능력에 달려있다는 것을 미국의 사례나 전문가들의 견해를 빌리지 않더라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하고 상식적인 생각이다.

  또 하나의 뉴스는 야당이 재정비로 분주할 때, 새누리당이 단독으로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현행 선진화법 때문에 선진화법의 개정은 여야간 합의를 필요로 한다. 의회의 다수세력인 새누리당은 자신의 뜻대로 법안통과가 어렵게 만드는 선진화법이 늘 불만이었다. 현행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 30명 이상이 요구하면 상임위 폐기법안을 본회의에 부의하게 되어 있는데, 새누리당은 이 절차에 의거하여 치밀하게 ‘작전’을 벌였다. 선진화법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고 이러한 새누리당의 시도에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먼저 자신이 폐기한 법안에 대해 직권상정을 요구하는 모순이다. 새누리당의 단독상임위에서 개정안의 통과를 바란다면 통과시키는 것이 절차상 맞는 일이다. 그러나 부결시키고, 다시 직권상정을 요구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절차에서 과연 이해가 되는 행위인가? 또 다른 문제로는 선진화법은 의회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절차법이다. 신속하고 일방적인 처리보다는 신중하고 여야협상을 거쳐야 한다는 취지에서 성안된 법이라면, 그 개정도 그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선진법 개정안의 요점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요건을 확대해 ‘재적의원 과반수가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경우’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진화법 개정은 다른 법안의 통과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절차법의 개정을 날치기 혹은 과반수의 힘으로 개정하려는 것은 절차법을 만든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뉴스가 일련 된 하나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행정부의 수장은 길거리서명을 통해서 국회불신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여당은 이에 화답하듯 ‘생산적인 국회’를 위한 선진화법 개정을 단독으로 처리하려 하고 있다. 대통령과 거대여당이 자신들이 가진 다양한 정책수단을 포기하고, 주어진 절차와 과정을 부정하려는 사고와 행동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민주주의는 번거롭고 비용이 드는 이념이자 제도이다. 그러나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 사회는 합의와 통합을 추구하고 정치는 정당성을 획득한다.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마저도 경시하려는 최근의 시도들은 한국정치를 민주화 이전으로 되돌리고 의회민주주의의 기초를 허무는 단초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위 글은 한국일보 2016년 1월 20일 (수)자 31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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