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칼럼] 안차수 교수
[경남도민일보 칼럼] 안차수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12.2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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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그램 실험과 언론의 존재이유

  대부분 사람들 악행 요구에 거부 없어…언론, 폭력 앞에 '아니요'말하는 역할

  1960년 5월 11일 세계2차대전 유대인 학살을 기획하고 수행했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체포됐다. 희생된 600만 명의 유대인 중에서 자신이 500만 명을 수용소로 이송했다고 자랑한 1급 전범. 패전 직후 미군에 체포되었지만 가짜 이름으로 수용소를 탈출했고, 이탈리아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도피해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이름으로 숨어 살던 아이히만을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끝내 추적 검거 이송하여 법의 심판을 받게 한 것이다. 아이히만의 재판은 악인과 악행을 이해하는 데 영감을 제공했다. 악마로 여겨졌던 아이히만의 평범한 모습은 많은 연구를 촉발했다.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와 복종 연구도 그중 하나다. 그의 전기 충격 실험 연구는 유명하다. 자발적으로 모집된 일반인들을 학생역할과 교사역할로 나누고 기억력 테스트를 해 학생이 단어를 외우지 못할 때마다 교사가 전기 처벌을 하도록 했다. 15볼트씩 전기 충격의 강도를 높여 최대 450볼트까지 올릴 수 있다. 학생은 미리 짜고 전기충격으로 고통스런 신음소리나 단발마를 연기했다.

  놀랍게도 참가자의 65%가 극한인 450볼트까지 전압을 높였다. 처음엔 장난처럼 키득거리다 100볼트 수준에서는 '이래도 되나' 멈칫거리고 150볼트가 넘어서면 '못하겠다'고 거부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진이 '실험의 책임은 내가 진다, 계속하라'는 말에 체념한 듯 300볼트를 넘어서고 450볼트까지 무감각하게 전압을 올렸다.결국 평범한 사람들도 상황에 따라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규명했다.

  지렁이 실험도 흥미롭다. 일반인 실험참가자에게 연구진은 살아있는 지렁이 한 접시를 참가자 앞에 놓고 잠시 후 이 지렁이를 먹는 실험을 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술렁이는 참가자들에게 언제든 실험을 거부할 수 있으며 이 방을 나갈 수 있다고 얘기한다. 결과는 어떨까? 아주 소수만 거부했을 뿐 대부분은 상황을 받아들이며 지렁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어떤 사람은 먹기 좋게 반 토막으로 잘라 놓는 사람도 있었다. 이해하기 힘든 복종이다.

  밀그램의 실험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그는 자격정지와 해직을 맛봐야 했다. 연구가 비윤리적이라는 이유와 악의 근원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켰다는 비판이었다. 요즘은 이런 연구를 하면 감옥행이다. 하지만 실험을 통해 얻은 하나의 변하지 않는 교훈이 있다. 거부의 표현이다. "아니요(no)"라고 분명히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동료들의 평범한 악행은 현저히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행을 요구받을 때 '아니요'라고 외치지 않을뿐더러, 왜 거부해야 하는지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명이라도 '아니요'라고 말하고 그 이유를 표현한다면 권위에 억눌린 숨 막히는 상황에서 자신과 동료를 구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언론은 왜 존재하는가? 폭력이 하얀 가운을 입고 터무니없는 일을 벌일 때 '아니요'라고 말하라고 국민이 만들어 놓은 위임된 권력 혹은 공개된 입이다. 언론이 세월호 청문회를 애써 회피하며 또 한 해가 터무니없이 마감되고 있다. "성을 갈기 전에는 직권상정은 없다"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외로운 '아니요' 앞에 2015년 한국의 언론은 부재했다고 후세에 전해야 한다. 언론이 부재했다면 민주주의도 없었다고 전해라. 내년 언론의 아니요를 기대한다.

<위 글은 경남도민일보 2015년 12월 21일 (월)자 11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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