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칼럼] 최동호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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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12.0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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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의 시인정조… 수원화성·22] 팔달문루에 올라

  조선천하 통합 염원 제왕의 포부 담아


  문루위에 서서 남북의 산하 관조

  사통팔달의 지세 호연지기 노래

  수원 화성의 중심부에는 팔달산이 있으며, 그 이름을 따서 남문을 팔달문이라 명명했다. 팔달산은 원래 탑산으로 알려졌지만 탑산의 그림을 보고 이태조가 “역시 아름답고 사통팔달한 산”이라고 해 팔달산이라는 명칭이 유래됐다고도 전해진다.

  1796년 성곽을 쌓으면서 건립한 팔달문은 서울의 남대문과 유사한 규모로 수원의 성문 중에서 장안문과 함께 가장 장대하고 화려하게 지어졌다.

  옹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남대문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 발달된 성문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증거다.

  정조는 팔달문에 관한 두 편의 시를 남겼는데 하나는 ‘칠언절구’이며 다른 하나는 ‘오언율시’이다. 특별히 두 편의 시를 썼다는 것은 그만큼 감회가 깊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쾌청한 날에 가고 소리는 운제를 타 오르고 / 乘晴鼓上雲梯

  남북의 여러 산들이 난간 밑에 들어오는구나 / 南北山入檻低

  높은 루에 올라 처음 천 리 먼 곳 바라보니 / 高處始窮千里眼

  가을 연기 아홉 점이 청제가 아닌가 묻노라 / 秋烟九點問靑齊

  1행에서 가고 소리가 구름사다리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고 했다. 가고는 피리와 북의 합성어인데 이것을 하나의 악기로 봐야 할지 서로 다른 두 개의 악기로 보아야 할지 분명하지는 않다.

  어떻든 북소리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것 같은 상승의 기분을 느끼게 한 첫 행의 시작은 매우 유연하게 하늘로 오르는 시적 상상을 자연스럽게 나타내고 있다.

  2행에서 팔달문 아래 난간으로 모여드는 남북의 산들은 조선 천하를 하나로 모여들게 하는 사통팔달의 자리에 팔달문이 서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3행에서는 남북의 산들이 모두 난간 밑으로 모여들었으니 높은 루가 됐고 그 곳에서 천리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이다. 화자의 웅지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욱 확장돼 마지막 4행에서 여기가 청제(靑齊)가 아닌가라는 의문형으로 나아간다.

  청제는 산동성(山東省)의 청주(靑州)와 제주(齊州)를 합한 명칭이며 중국 전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중국의 구주(九州)가 마치 아홉 점의 연기처럼 보인다는 데서 온 구절이다. 중국을 아홉 마리의 용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렇게 보는 시각에서 나온 말이다.

  이로 보아 정조는 중국에 비견해 조선 전체를 팔달문루에서 바라봤던 것이다. 극히 짧은 시이기는 하지만 정조가 표현한 내포는 매우 큰 시다.

<위 글은 경인일보 2015년 11월 30일 (월)자에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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