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시인
[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시인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11.2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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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감성칼럼]신이 겨울을 만든 이유?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녘을 날아간다/ 아 이제는 한적한 빈들에 서 보라/ 고향 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고향 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이 무렵이면 흥얼거려지는 노래가 있습니다. 김재호 작사, 이수인 곡 ‘고향의 노래’입니다. 학창시절 선생님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배운 그 노래가 세월 따라 잊히지 않고 해마다 되살아와 흥얼거려집니다. 그런 감정을 우리는 ‘추억’이라 이릅니다.

  베이비부머(1955~1963)는 겨울에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시대 가난과 추위가 준 선물이었습니다. 얼음지치기, 연날리기,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며 추위를 잊은 채 뛰어놀다 코끝과 귀가 빨갛게 얼어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따뜻한 아랫목에 가족 모두 시린 발을 넣고 추운 겨울밤을 지내던 그 겨울이 엊그제 같은데 입동, 소설 지나고 대설, 동지, 소한, 대한이 남아있지만 겨울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기능성을 갖춘 아웃도어 웨어가 도시의 겨울 패션이 된지 오래입니다. 히말라야 설산에서나 입는 등산복들이 도시의 일상복이 된 지금, 추위는 우리와 무관한 계절일 뿐입니다. 그래서 겨울은 오래전부터 실종 상태입니다.

  신이 겨울이란 계절을 만들어준 것은, 나보다 더 추운 이웃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기 위한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추워지지 않는,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겨울이기에 우리는 ‘배려’까지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준비해야 될 것이 많았듯이 이웃에 대한 배려 역시 연말에 하는 일회성 행사가 아닌 늘 계획하고 실천해야 하는 계절의 덕목이었으면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 일보다 훈훈한 온돌은 없습니다. 온정으로 데운 그 온돌은 봄이 올 때까지 모두에는 따뜻한 희망이고 배부른 위안입니다.

  내년 1월 대학생들과 네팔 해외봉사를 앞두고 최근 네팔 관계자를 만났습니다. 지진이라는 그 큰 재앙에 대해 세계에서 보내는 온정의 손길이 2개월 만에 끊어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겨울이 찾아오는 지금, 도움이 더욱 절실하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래서 봉사는 행사가 아닌 행동이며 실천이길 기대합니다. 마더 테레사가 말했습니다. ‘사랑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고, 그 행동이 바로 봉사이다’고. 행동하는 사랑이 올 겨울에는 만발했으면 합니다. 사랑 없는 행사가 아닌 진실한 실천을 바랍니다.

  추워본 사람이 추위의 고통을 압니다. 굶주려본 사람이 굶주림의 고통을 압니다. 겨울에 추위가 실종되었기에 우리는 여전히 힘든 사람들의 무덤덤한 한 이웃이 아닌지 되돌아봅니다. 직장에서 내몰리기 시작한 베이비부머가 어려운 시절입니다. 어렵기에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걱정합니다. 복지는 나라의 일이지만 행동은 사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클럽의 회원이 되는 일도 위대하지만, 내가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누면 무한의 사랑이 되는 것을 아는 일, 그것이 봉사의 첫걸음이라 생각합니다.

  ‘달 가고 해 가면 별은 멀어도/ 산골짝 깊은 골 초가 마을에/ 봄이 오면 가지마다 꽃잔치 흥겨우리/ 아 이제는 손 모아 눈을 감으라/ 고향 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고향 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기억나시죠? ‘고향의 노래’ 2절은 이런 가사입니다. 올 겨울, 온정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싸리울에 함박눈처럼 수북하게 쌓이길 기도합니다. 다함께 작은 실천의 기쁨을 아는 겨울이길 바랍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언론출판원장

<위 글은 경상일보 2015년 11월 20일 (금)자 19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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