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칼럼] 박태일 교수
[국제신문 칼럼] 박태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11.05 0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라잃은시대·왕들짬·수욕녀

  늘그막 역사학자들이 모여 이른바 독립문 앞에서 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모임을 가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다른 자리에서는 찬성 서명에 이름을 묶어 내놓은 역사학자들도 있었다 한다. 그들은 독립문을 세운 독립협회 초대 회장이 역적 완용이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완용의 비서가 이인직이었고, 그가 왜로 소설을 흉내 내 쓴 작품이 '혈의 누'라는 사실도. 완용의 조카가 서울대 교수였던 이병도다. 그들 가운데는 이병도의 후배 제자 동문도 적지 않으리라. 이병도가 우리 역사 기술에 끼친 해악을 바로 잡는 일에서도 그들은 앞장섰으리라 믿는다.

  왜로가 썼던 '일한합방(日韓合邦)'을 '한일합방'으로 고쳐 우리말 사전에 올려 퍼뜨린 사람이 서울대 교수였던 이희승이다. 국정화 문제로 나섰던 역사학자들만은 한일합방이니 병합이니 하는 똥말은 쓰지 않으리라. 우리 학계에서 경술국치를 학술용어로 처음 썼던 이는 짐계 려증동 선생이다. 1973년에 낸 '한국문학사'가 그 것이다. 그때 선생 나이 마흔하나. 이어서 선생은 1986년 '한국역사용어'를 내서 우리 역사용어 일컫는 원칙을 세상에 밝혔다. 책 머리글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적을 경우, 서로가 말을 달리하면서 자기나라를 이롭게 적는 것은 자기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로 시작한다. 국사책이 '일방통행어'로 이룩되는 이치를 환하게 일깨운 셈이다. 우리 역사의 주어는 늘 우리여야 한다. 그러나 나돌고 있는 용어 가운데는 얼빠진 말이 숱하다. 셋만 든다.

  첫째, 이른바 '일제강점기'란 일컬음이다. 경술국치(1910년 8월 29일)에서 을유광복(1945년 8월 15일)까지 35년에 걸친 시대를 뜻한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 역사용어가 아니다. '일제'가 주어로 된 말이다. 일제강점기라는 말을 쓰면 쓸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쪽은 일본이다. 우리 겨레는 쓰면 쓸수록 열등감만 더한다. 이른바 일제강점기를 실국(失國)시대라 쓴 분은 로석 려구연이다. 완용과 한 시대를 살면서 피눈물을 흘렸던 학자다. 그 손자가 려증동 선생이다. 나는 선생에게 배워 나라잃은시대라 풀어 쓴다.

  둘째, 이른바 '대화퇴(大和堆)'라는 이름이다. '디지털울릉문화대전'이라는 누리집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라는 나라 기관에서 나랏돈으로 마련한 일이다. 거기 독도 위쪽의 바다 밑, 너르고도 높은 고원 이름을 '대화퇴'로 올렸다. '위키 백과'라는 곳에서도 '대화퇴'는 '동해 최고의 어장'으로 '동해는 깊은 바다로 간주하고 있었지만 1924년 일본 해군의 측량선 야마토(大和)호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썼다. 이곳을 부르는 우리 학계나 민간의 공식 이름이 '대화퇴'다. 터무니는 1924년 왜로 측량선 '야마토'가 '발견'했다는 기록이다.


  모름지기 일이 그러한가? 1924년 이전, 오랜 세월 우리 어민들이 동해 바다 물밑을 몰랐고 그곳을 부르는 이름이 없었을 것 같은가. 제 바다에서 이루어진 겨레의 오랜 삶과 이름을 버리고, 기껏 1924년 왜로 측량선의 기계 측량만 잣대로 삼다니. 어리석음도 그런 어리석음이 없다. 게다가 '대화'란 이른바 '대일본제국'을 표상하는 이름 아닌가. 그러고도 독도를 우리 땅이니 동해가 바른 이름이니 내세울 수 있는가. 동해 우리 어민들이 그곳을 부르는 이름은 '왕들짬'이다. 왕들, 곧 바다 밑 큰 들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나는 그 이름을 일찌감치 내 시에서 쓴 적이 있다. 하지만 아직 께름칙하다. 왜냐하면 '왕들'이 이른바 '대화'의 우리식 번역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이른바 '위안부'라는 이름. '종군 위안부'를 줄여 부르는 이 말 또한 틀렸다. 나라잃은시대 후기, 섬나라 왜로가 저지른 갖은 악행 가운데 하나가 우리를 그들 군대의 성노리개로 삼은 짓이다. 그로 말미암아 통분과 치욕을 겪었던 분들을 일컫는 말이 위안부란다. 누가 누구에게 위안을 베풀었다는 뜻인가.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는 자국 문서에서 위안부를 버리고 '일본군 성노예'로 고쳐 적도록 지시했다. 제 역사용어를 바로잡지 못하다 나라가 부끄러움을 겪은 경우다. 위안부라는 말은 왜로가 주어로 된 이름이다. 게다가 성수탈 만행의 본질을 덮은 용어다. 우리 입장에서 제3자 용어인 '성노예'는 쓸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나는 '수욕녀(受辱女)'로 적는다.

  이름이 발라야 생각이 바로 선다. 역사용어를 틀리게 쓰면 나라 지킬 힘을 잃는다. 이른바 '일제강점기' '대화퇴' '위안부'는 얼빠진 이름이다. 그런 말이 굳어지게 된 데에는 역사학자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 상인은 뚫고 군인은 막고 정치꾼은 관계를 따진다. 그들의 공통점은 이해득실에 따르고, 무리를 짓는다는 점이다. 학자는 옳고 그름, 똥오줌 가리는 일을 하는 이다.

  오랜만에 역사학자들이 교과서를 빌미로 끼리끼리 만났다 한다. 학생들이 나라 역사를 교과서로만 익힐 것이라 착각하지 말라. 역사학자들이 모여 하는 일에서도 보고 배운다.

 

<위 글은 국제신문 2015년 11월 5일(목)자 31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