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칼럼] 임을출 교수
[매일경제 칼럼] 임을출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10.2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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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절호의 기회

"아버지 이렇게 만나는 게 이게 끝이래요. 아버지…그러니까 아버지 우리가 이게 끝이래요…그래서 큰절 받으시래요."

다시 만날 기약 없는 20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막을 내렸다. 전쟁과 분단으로 헤어져 60여 년 동안 상봉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 생사 확인을 하지 못하는 유일한 민족이라는 오명을 다시금 생각게 하는 부끄러운 시간이었다.

앞으로 남북 관계는 어떻게 펼쳐질까. 북한은 이번 이산가족 상봉의 성과를 남북 관계 개선으로 이어가자며 남북고위급접촉에서 도출된 `8·25 남북 합의` 이행에 대한 의지를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8·25 남북 합의`에 따라 조만간 남북 당국 간 회담과 적십자 본회담 등을 추진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조만간 남북 당국 간 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측이 제시할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초기 단계의 의제들은 분명해 보인다.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폭넓은 생사 확인 등이 우선 논의 의제로 꼽힌다. 이에 대해 북한도 본격적으로 자신들이 희망하는 조치들을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지난 8·25 고위급 접촉 때에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결국 큰 틀에서 보면 남북 간의 화해, 교류협력의 가장 큰 장애물로 간주하는 5·24 조치의 해제를 겨냥할 것이다. 금강산 관광 재개도 빠뜨릴 수 없는 의제가 될 것이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인식하고 있다. 리충복 북측 상봉단장은 "온 겨레가 북남 관계 개선과 민족의 화해와 단합이 이룩되기를 절절히 갈망하고 있다"며 "북남 적십자단체들은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응당한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남측과의 대화를 진전시켜 여러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 정부의 대응도 일단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3일 국회에서 "여러 민간 교류를 통해 문화, 환경, 민생의 동질성을 회복할 다양한 사업이 있다"며 "다방면의 민간 교류를 지원하고자 하며, 통일부에서 적극적으로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북 정책의 변화가 감지되는 발언이기도 하다.

북·중 관계도 훈풍이 불고 있다. 류윈산 중국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10·10 당 창건기념일 방북 이후 얼어붙었던 북·중 경제협력에 해빙을 가져올 조짐이 여기저기에서 감지되고 있다. 특히 그동안 합의는 했으나 3차 핵실험 이후 중단되었던 북·중 간의 굵직굵직한 경협 사업이 재개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북한의 평화 공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 간의 긴장 완화를 토대로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하고, 경협 확대를 도모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노동당 70주년 기념행사에서 이전에 공언했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면서까지 이산가족 상봉에 호응했다. 물론 북한의 이러한 평화 공세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낙관하기 어렵다. 해빙 무드 속에서도 서해 북방한계선에서의 긴장이 도사리고 있고, 무엇보다 미국의 대북 제재 압박 공세가 거세다. 북한의 핵·경제개발 병진 노선을 포기시키려는 전방위 압박을 가할 태세다. 한·미 정상은 10월 처음으로 북핵 공동서명을 채택했고, 인권 공세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전 같았으면 북한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강하게 반발했을 내용들이다. 그런데 북한은 아직까지 인내하고 있다.

남북 화해·협력을 통해 주민생활 향상 등의 성과를 내려는 의도가 읽힌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0월 10일 당 창건기념 열병식 연설 내용의 절반 이상을 `인민 중심`을 강조한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인민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 노선을 갖고 갈 것임을 강하게 시사한 바 있다. 북측 단장은 (이산가족 간) 상시 접촉, 편지 교환까지 협의하겠다고 이전보다 한 발 나아간 전향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지금이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해결할 적기인 듯하다. 안팎의 도전적 요인을 전략적으로 관리하면서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우선순위로 놓고 호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유인책을 강구할 때인 것 같다.

<위 글은 매일경제 2015년 10월 28일(수)자 39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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