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김용복 교수
[한국일보 칼럼] 김용복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10.2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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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국정화 논란인가

  국정교과서 논란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여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도 블랙홀로 만들고 있다.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국정화 주장의 문제점은 너무도 명확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왜 이 시점일까?’하는 점이다. 역사교과서 문제는 그 중요성은 인정되지만 긴급성은 다른 이슈에 비해 떨어지며 단기간에 합의될 수 있는 과제도 아니다. 따라서 정말 중요한 어젠다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정권 초기부터 차분하게 개혁과제로 제시하고 역사교과서 개선 방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정권 후반기에 그것도 총선을 몇 달 앞두고 국정화 문제를 불쑥 제기하여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극단적인 분열로 치닫게 만들고 있다. 그것도 청와대가 주도하면서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후반기를 맞아 국정 운영의 핵심 개혁으로 노동, 공공, 교육, 금융의 4대 과제를 제시하였다. 박 대통령은 “올해 안에 전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완료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노동개혁의 절박성을 강조했다. 또한 혈세 낭비를 막기 위해 정부의 투명하고 공개적인 예산개혁과 금융개혁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지속적인 교육개혁 추진 의사도 분명히 해 자유학기제, 공교육 정상화, 교육재정 개혁, 일ㆍ학습병행제, 선취업 후진학, 사회수요 맞춤형 인력 양성 등 6개의 역점과제를 제시하였다. 이 때에도 역사교과서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치권은 총선을 앞두고 시급한 선거룰이 확정되지 않아 여야 모두 내홍을 겪고 여야 대치가 심화되고 있었다. 현 정부의 후반기 개혁과제를 추진하기 위해서도, 선거구 획정과 선거룰에 대한 합의를 위해서도 국회의 지지와 여야의 타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국정교과서 논란은 여야 대치를 극단화시키고, 그렇게 중요하게 추진되었던 노동개혁 등의 과제는 무대에서 사라졌고, 선거구 획정과 공천제도 개선을 둘러싼 논란도 잠복되어 버렸다. 여야정치는 사라지고 청와대 정치가 정국을 지배하고 있다. 왜 이 시점이고 이 논란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편을 가르고 확고한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것은 일시적이지만 성공한 것 같다. ‘가르기’ 정치는 우리 편과 남의 편으로 나누어 내부를 결속시키면서 상대방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하는 전략이다. 지금까지는 공천권과 선거구 획정을 둘러싸고 친박과 비박, 친노와 비노 등 여야의 내부 갈등이 전면화되었지만, 뜬금없는 국정화 논란으로 국정화 찬성과 반대, 좌경과 종북 대 친일과 독재로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내부 갈등은 잠복되고 여야 갈등, 보수와 진보의 대립 등으로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두 편으로 나뉘어졌다.

  그런데 이러한 편가르기 정치에는 시급한 여러 개혁 과제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하는 전략적 고려가 보이지 않는다. 여야를 극단으로 몰아놓고 시민사회를 양분하면 선거와 정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일을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대통령의 정치는 설득의 정치가 기본이다. 대통령제는 기본적으로 국회의 협조를 얻어야 원활히 운영된다. 대통령이 국회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는 여당의 지원만이 아니라 야당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야의 타협과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바로 설득의 정치이다. 국정교과서 논란은 여야를 가르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다. 일을 잘 하기 위한 정부의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선거와 정치는 국회에 맡기고 국정 운영과 개혁 과제의 실천에 집중하는 청와대와 정부의 모습에 더 많은 국민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의회정치를 존중하고 여야 타협을 가능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교과서 문제를 재고하고,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위 글은 한국일보 2015년 10월 28일(수)자 31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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