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인터뷰] 심지연 명예교수
[조선일보 인터뷰] 심지연 명예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10.2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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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과서의 이승만 서술… 마오를 功七過三으로 평가한 중국에서 한수 배워야"

  [國史교과서 논란, 릴레이 인터뷰]

  "中은 문화혁명 겪었어도 후세가 역사 자긍심 갖게 해…

  한국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 희생 기술하더라도 현대사 전체를 부정할순 없어"

  "5·16을 군사정변으로 보지만 당시 혼란 수습 못한 정치권이 무능했던 점은 분명하다
  자정능력 갖춘 한국 민주주의… B플러스는 되는 것 아닌가"
 
  심지연(67) 경남대 명예교수는 19일 "1948년 남한에서 먼저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한 달 뒤에 북한 정부가 들어섰다는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기술은 당시 복잡한 정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평면적인 역사 인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1980년대 '한국민주당 연구' '조선신민당 연구' '인민당 연구' 등을 잇달아 펴내며 해방 전후사 연구에 불을 지폈던 정치학자다.

  심 교수는 1946년 2월 북한에서 수립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사실상 정부 역할을 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조선중앙연감에도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정권 기관(주권 기관)으로 명시하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남한에서 단독정부가 먼저 수립됐다는 식으로 기술하면 분단 원인을 남한에만 돌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 현대 정치사를 전공한 연구자 입장에서 봤을 때 교과서 현대사 기술에서 특히 쟁점이 되는 문제는 무엇인가.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 5·16에 대한 인식, 북한에 대한 평가 등 세 가지다. 이 대통령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시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지내고, 미국에서 외교 활동을 통해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알렸다. 정부 수립 이후 권력 유지를 위해 권위주의의 폐단에 빠졌지만, 예수나 석가모니 같은 종교 지도자도 아니고 인간적인 삶을 살았던 정치인에게 절대선(善)을 요구하는 건 무리가 있다."

  ―5·16은 어떤 부분이 문제인가.

  "'5·16을 군사정변과 혁명 가운데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문제는 교과서만이 아니라 국무총리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도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그만큼 민감하고 까다로운 문제라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5·16은 선거로 수립된 제2공화국을 무력으로 전복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는 점에서 군사정변이라고 본다. 다만 당시 정치권이 무질서와 혼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보였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현대사의 쟁점에 대한 인식 차를 줄이기 위한 해법은.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끝난 뒤 마오쩌둥 전 주석에 대해 '공칠과삼(功七過三·공이 칠이고 과오가 삼)'으로 평가한 대목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도 어려웠던 시기에 역경을 딛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던 공에 비중을 실어서 가르쳐야 후세가 자긍심을 갖고 역사를 바라보고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게 된다."

  ―후세가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역사 교육이란.

  "전후 최빈국(最貧國)에서 개발도상국에 공적 개발 원조(ODA)를 제공하는 나라로 발돋움한 경우는 한국밖에 없다.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농민의 희생을 함께 기술해야 하지만 한국 현대사 전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광복 이후 한국과 북한이 걸어온 정치 변화를 점수로 평가한다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자정(自淨) 능력을 갖춘 체제라는 점에서 B플러스는 되는 게 아닌가. 반면 획일적이고 폐쇄적이며 자기 완결적인 북한 체제는 점수를 주기 어려울 만큼 낙제점이다."

  ―한국사 교과서가 좌편향에 빠져 있다는 비판에는 동의하는가.
 
  "역사 교육은 전공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답변하기에 조심스럽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보면 현재 검정 교과서로 공부한 20·30대가 국정교과서로 배운 40·50대에 비해 대북 인식 등에서 보수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좌편향 교과서가 좌편향을 낳았다'는 인식과는 배치되는 결과인 것이다."

  ―교과서 국정화에는 찬성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그렇다. 역사를 보는 시각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전문가 검증과 여론 수렴을 통해 편향성이나 오류를 자율적으로 수정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2017년 3월 신학기까지 국정교과서를 배포하겠다는 정부 일정도 지나치게 빠듯하다. 필자 선정과 의견 수렴, 집필 기준 마련과 검정 과정까지 감안하면 이토록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할지도 회의적이다."

  ―교과서 국정화 자체가 여야 최대 쟁점이 됐다.

  "대통령 5년 단임제에서 새 정부가 전임 정부의 업적을 부정하거나 폄하하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찬반 여론이 비슷한 상황에서 차기 정부에서 국정화에 대한 입장이 또다시 바뀌지 않는다는 보장을 누구도 할 수 없다."

<위 글은 조선일보 2015년 10월 20일(화)자 6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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