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칼럼] 안차수 교수
[경남도민일보 칼럼] 안차수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10.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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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벨스와 매카시가 사는 나라

  공영방송 이사장·이사 사회분열 발언…민주공화국 흔들기에 침묵해선 안돼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노무현은 변형된 공산주의자', '박정희는 전향한 공산주의자'….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충격적인 발언이 논란이다. 국정감사 자리에서 '판사, 검사, 공무원 중에 김일성 장학생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국사학자 90%는 좌경화'라는 자신의 말을 굽히지 않았다. 막말, 망언, 심지어 정신병자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와 용공 마녀 사냥의 주역 매카시를 빗댄 '고벨스'와 '고카시'라는 별명도 얻었다. 가짜 서류를 들고 "여기 내 손에 국무장관이 파악한 205명의 공산당원 명단이 있다"며 빨갱이 몰이로 10년간 미국을 광기로 내몰았던 매카시를 빗댄 것이다.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8일 조우석 KBS 이사는 토론회 자리에서 문재인이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한다며 '동성애자들은 더러운 좌파'이고 '이들이 노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국가전복'이라는 귀를 의심할 발언을 퍼부었다. 공영방송의 이사장에 이어 이사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실명을 거론하며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서슴없이 분출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믿게 된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나에게 한 문장만 주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히틀러 신화를 창조한 나치 선동가 괴벨스의 말이 이명처럼 울린다.

  잘 알다시피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며 존재이유는 공익추구다. 공영언론은 권위주의 시대 왕의 입, 소비에트 공산주의 시대의 계급 이념 수단, 자본주의 시대 무책임한 언론자유를 극복하고 공익에 부합하도록 국민적 합의로 협치되는 제도이다. 공영방송의 가치를 수호해야 할 위치에 있는 책임자들이 오히려 무분별한 언행으로 사회분열과 집단 혐오를 앞장서서 조장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전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공영방송이 지금처럼 정치적 대화 상대를 부정하고 이념의 전사 노릇이나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자신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소비에트 공산주의 언론에 다름 아니다. 고영주 이사장이 평소 수호하려던 자유민주주의의 언론가치는 백가쟁명 백화제방을 통해 국가가 발전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의 이사장이 48%의 국민적 지지를 얻은 바 있는 야당 대표를 향해 공산주의자라고 딱지를 붙이는 행위는 총리의 '총선 필승' 건배사보다 더욱 위험한 행위다. 집권당 총리와 장관의 건배사야 기껏해야 선거에 이기려는 치기어린 충정으로 이해한다 치더라도 다양성과 사회소통의 공적 가치를 지켜야 할 공영방송의 책임자가 정치편향과 이념몰이로 민주주의의 보편적 핵심가치를 거부하는 행위는 명백한 자기부정이자 민주공화국의 국가 구성과 헌법이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괴벨스와 매카시의 기법은 유명하다. 분열을 만들고 증오를 키우며 공포를 안겨주는 것. 역사적 교훈 역시 명확하다. 열린사회의 적은 이들처럼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침묵이다.

  침묵이 시작되면 이성은 눈을 감고 광기는 뱀 머리처럼 일어난다.

<위 글은 경남도민일보 2015년 10월 12일(월)자 11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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