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특집] 최동호 석좌교수
[경인일보 특집] 최동호 석좌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10.08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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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70기획·신&구 통하다

[경인일보 창간70기획·신&구 통하다]최동호 시인 & 박영 소설가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린 10월의 첫날. 수원 행궁동 공방거리의 한 찻집 앞에서 시인 최동호(68) 교수와 박영(32·여) 작가가 만났다. 최 교수는 지난 ‘1979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꽃, 그 시적 형상의 구조와 미학’으로 데뷔한 이후 교단과 평단에서 뚜렷한 궤적을 남긴 문단의 원로이다.

  박 작가는 ‘2015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서 ‘아저씨, 안녕’으로 당선된 신예 소설가다. 짧은 인사 후 두 사람은 사진 촬영을 위해 찻집 근처를 함께 걸었다.

  “그냥 걸으면 되나요?” 어색했다. 둘은 살아온 세대가 다르고, 성별도 다르다. 35년의 세월차는 고스란히 두 어깨 사이의 거리감으로 드러났다. 좀 더 가까이 붙어달라는 사진기자의 요청에 몸을 움직여보지만, 몇 걸음 걷다 보면 이내 둘 사이는 다시금 원래대로 떨어져 있었다.

  비가 내려 공기가 깨끗이 씻겨진 탓일까. 대화 중간 발생하는 침묵의 순간은 더욱 또렷하고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으니, 바로 ‘문학’이었다. 한 사람은 앞서 수십 년 간 그 길을 걸어왔고 한 사람은 이제 막 발걸음을 뗐다는 차이일 뿐, 둘은 방향점이 같았다. 문학이라는 매개로 어색함의 벽을 허물기 시작한 이들, 과연 이날 ‘신구(新久)’는 ‘통(通)’할 수 있을까.

  #두 시간으로 압축된 대선배의 70년 인생, 공감을 이끌다

  “여기 앉는 게 어떤가. 이 자리가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 주인공이 앉았던 곳이라는 구만… (허허허)”

  최 교수는 수원을 배경으로 촬영된 최신영화를 언급하며, 이날 만남의 장소를 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두 사람은 가벼운 대화로 어색함을 조금씩 풀고는, 이내 진중한 대화를 시작했다. 최 교수는 현시대를 급박한 변화의 시대로 진단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역사적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혁신과 발전을 거듭해왔지만, 너무 짧은 시간에 이뤄졌다는 점이 세대 간 이견과 갈등을 낳은 배경이 됐다”며 “디지털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활자문화와 디지털문화의 세대감과 괴리감은 실로 크고, 변화의 속도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 보니 소통할 여유가 전혀 없다”고 했다.

  박도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소통은 고사하고 대화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 같다. 가령 애인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공감했다.

  시대적 배경이 문학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뜻을 같이했다. 최 교수는 “현대인들은 길게 얘기하는 것 자체에 피로감을 느끼다 보니, 문학에서도 소설 장르가 약화되고 시도 짧아지는 추세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스마트폰 한 화면에 들어오는 짧은 분량이라야 그나마 읽히는 시대에 와 있다”고 했다.

  이에 박 작가는 “빠른 변화 속에서 활자가 최소화되고 눈으로 보는 것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다 보니, 때론 영화라는 장르가 부러울 때가 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대선배에게 조언을 구했고, 최 교수는 “시대적 흐름을 꺾을 순 없다. 하지만 활자문화는 사유하도록 하는 근원적인 힘이 있다. 그 힘을 믿고 변화에 편승하거나 떠밀려가지 말고 정도를 걸어야 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최 교수는 문학예술이 갖는 힘을 강조했다. 그는 “문학은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세대 간 단절을 넘어 원활한 소통 속에 문학이 지속성을 갖고, 나아가 문화가 융성해질 때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에 박 작가는 소통의 어려움에 대해 자신의 세대를 대표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이 시대 젊은이들을 향해 흔히 ‘희망이 없는 세대’라는 말을 많이 한다. 교수님 세대가 보시기엔 마냥 편하게만 살아온 나태한 세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치열한 경쟁 구도에 내몰린 우리 세대에게도 고충은 있다. 무겁고 깊은 건 기피하고,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니 어느 순간 공허함과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는 ‘가엾은 세대’가 바로 우리 세대”라고 털어놨다.

  후배 세대의 고민에 대한 선배의 대답은 그래도 젊은이들이 희망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 교수는 “젊은이들이라면 ‘물질’보다 인간의 ‘자긍심’을 우선시했으면 한다. 기성세대가 갖지 못한 순수함과 당당한 자신감으로 밀어붙여야 한다”고 했다.

  또 “선배 세대는 젊은 세대가 좀 더 마음을 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귀를 열고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소통의 출발점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신예 작가를 향한 격려와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일부 신세대 작가들을 보면 문학에 대한 확신보다는 ‘빨리 뜨고 싶은’ 마음이 많다는 느낌을 받아 안타깝다. 자고 일어나니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해졌다는 말은 맞지 않다. 진지하게 근원적인 문제를 파헤치고, 탐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 주자처럼 말이다”고 했다.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이야기

  대담은 끝났다. 하지만 모름지기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기 위해선 밥을 같이 먹어야 하는 법. 둘은 자연스레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모처럼 내린 가을비가 두 문학인의 감수성을 자극한 탓일까. 술잔도 곁들여졌다.

  “교수님, 실은 저 오늘 한 시간 전부터 와서 기다렸습니다. 어젠 밤새 한숨도 못 잤어요…” 문학계 대선배와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 신예 작가에겐 엄청난 부담이었을 터. 부담은 컸지만, 박 작가는 너무나 뜻깊은 자리였다며 재차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녀는 “최 교수님도 저도 모두 10대 때부터 이 길을 꿈꿨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험난한 이 길에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앞서 이 길을 걸어가신 분께 조언을 들으니 굉장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둘은 이미 소통할 준비가 갖춰진 사람들이었다. ‘희수(稀壽)’를 앞둔 나이지만, 최 교수는 ‘사도’, ‘베테랑’ 등 최근 개봉영화들을 빠짐없이 보며 감각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를 화두로 신세대와 대화를 풀어냈고, 문학인 특유의 시선으로 사회 현상에 비춰보며 자신의 견해를 펼치기도 했다.

  박 작가는 활자가 힘을 잃어가는 시대를 사는 젊은이지만, 그래도 ‘활자의 힘’을 믿는다는 아날로그적(?) 시각으로 디지털 시대를 향한 공감의 시선을 이끌어냈다. 이 같은 둘의 노력은 이날 35년 세월차를 극복하는 소통의 징검다리가 됐다.

 

  최 교수는 35년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 박 작가를 격려하고 또 격려했다. "문학은 출발점도 종착점도 외로움이라네. 끊임없이 외로운 길을 걷게 되겠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계속 정진하고 건승하길 비네. 자, 건배!"

<위 글은 경인일보 2015년 10월 8일(목)자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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