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칼럼] 최동호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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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09.2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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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제공의 ‘장안문루’에 화답하다

  충신이 쌓은 장엄한 성을 기리다

  ‘수원성 축성한 채제공’ 향한 신뢰

  부민 원성·민폐 삼갔던 공로 치하

  ‘겹겹으로 옹위한 천연 절벽’ 묘사

  정조는 1793년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을 수원부 유수로 임명하고, 1794년 본격적으로 수원성(水原城) 축성을 하명했다. 이후 1796년 수원성이 완성되기까지 채제공은 혼신의 힘을 다해 수원성 축성 사업을 총괄한다. 1758년 도승지 재직 당시, 그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가 악화되자 죽음을 무릅쓰고 파국을 막아냈다.

  영조는 정조에게 “채제공은 진실로 나의 사심 없는 신하이고 너의 충신”이라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러 해 수원성을 축성하는 과정에서 채제공은 자신의 소회를 시로 표현했는데, 정조는 이에 대해 네 수의 시로 화답했다. 그 중 ‘장안문루(長安門樓)’에 화답한 것이 다음의 시다.

  찬 서리는 고향 땅에 몇 해나 내리었을까 /霜露桑鄕歲幾飜

  큰 은혜 작은 마음으로 보답할 수 없으나 /寸心無處答隆恩

  이룩한 공 우뚝하여 성 담장이 장엄하고 /經營屹屹雉墉壯

  겹겹으로 옹위하는 천연의 절벽 드높다 /拱護重重象設尊

  일만의 민호는 호우의 길 오른편에 임하고 /萬戶橫臨湖右路

  삼군의 기세는 진남문에 솟구치고 있구나 /三軍氣湧鎭南門

  화성의 인화를 어찌 내 홀로 이루었으랴 /人和此地予何力

  온천 다녀온 그때의 성덕이 아직 전하네 /盛德猶傳昔幸溫

  첫 두 행은 고향에 가지 못하고 여러 해 화성 축성에 진력한 채제공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나타냈고, 3~6행은 수원성의 장엄한 모습을 시각적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두 행에서는 다시 채제공의 공로를 치하하고 있다.

  특히 수원성의 인화에 대해 언급한 것이 주목된다. 정조는 수원성을 축성하는 과정에서 부민들의 원성을 사거나 그들에게 민폐가 되는 일을 극도로 삼가도록 명하였는데, 채제공이 이를 잘 수행했음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 8행을 보면 사도세자가 지병으로 온천에 갔을 때의 일을 거론한 것으로, 채제공의 충성심이 어제 오늘 비롯된 것이 아니었음을 되새기며 영조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상기하고 있다. ‘진남문’은 1790년에 건립됐으며, 1795년 정조가 이를 다시 ‘신풍루’라 명명했다.

  이 시에는 전체적으로 왕과 신하의 절대적인 신뢰감이 나타나 있다. 이 같은 강한 결속력이 없었더라면 수원성은 견고하고 아름답게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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