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칼럼] 김근식 교수
[중앙일보 칼럼] 김근식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08.2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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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평화에서 시작된다

  "남북 충돌 반복되는 정전체제는 ‘절반의 평화’

  도발 의지 아예 없애는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평화 오디세이의 여정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휘황한 단둥과 비교되는 초라한 신의주만 안쓰러운 게 아니었다. 우리 땅 신의주를 머나먼 단둥으로 돌아서 봐야 하는 현실이 착잡했다. ‘북방 소수민족 정권’ 고구려의 흥망을 당연한 것으로 폄하하는 중국의 역사인식이 불쾌했다. 우리 민족의 발원지 백두산 천지를 감동만으로 받아 안기도 어려웠다. 장백산이라고 써붙인 중국 지프를 타고 올라야 하는 처지가 안타까웠다. 두만강을 끼고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북·중·러 국경에서 우리가 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이 후회스러웠다.

 평화 오디세이에서 느낀 회한은 한반도가 갈려 있기에 비롯되는 것이다. 오래도록 하나였고 어차피 하나였던 한반도가 갈려 있고, 서로 적대하고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통일 대박을 말하고 정부는 통일준비위를 가동하고 있지만 광복 70년을 맞는 남북관계의 현실은 통일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무색한 상황이다.

 정전 상태에서 상시적으로 군사적 대결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네 현실은 평화 없는 통일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새삼 깨닫게 한다. 특히 최근 겪고 있는 비무장 지대에서의 군사적 충돌과 최고조의 긴장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실감케 하고 있다.

 세계 10위 안의 교역국가가 언제라도 군사적 도발에 노출돼 있고 군사적 충돌이 언제든 국지전으로 확대될 수 있음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확성기 방송과 비무장 지대 포사격만으로도 북한군과 한·미연합군의 전면전까지 감내하고 결심해야 하는 현실을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불안정한 평화를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평화로 정상화시키지 않고서는 사실 통일은 매우 위험할 뿐만 아니라 무모할 수 있다. 평화가 전제되지 않는 통일은 결국 무력을 통한 흡수이거나 우리 내부의 분쟁, 충돌과 적대를 수반하는 통일이다. 이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에 가깝다. 1945년 해방이 우리 민족에게 환호의 사건이었지만 이어진 역사는 분단과 전쟁이었다. 준비하지 못한 ‘주어진’ 해방이었기에 ‘갈린’ 해방으로 다가왔고, 결국은 엄청난 희생을 겪어야만 했다. 평화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로 통일이 닥쳐온다면 이 역시 폭력적인 통일로 귀결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맞이해야 할 통일은 반드시 평화로운 통일이어야 한다. 독일 통일이 아름다운 것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해서가 아니었다. 전쟁도, 내전도, 적대적 충돌도 없이 독일은 평화롭게 통일됐다. 비슷한 시기 통일에 합의했던 예멘은 3년 뒤 내전을 겪고서야 통일됐다. 이후에도 독재에 신음했고, 지금은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온상이 되고 있다. 평화롭지 못한 예멘의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비극이었다.

 평화로운 통일은 우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갈등을 완화하고 해소하는 데서부터 준비해야 한다. 전쟁을 종료한 게 아닌 일시 중단한 정전체제는 한반도 곳곳에 기름을 부어놓은 것과 같다. 성냥불을 긋기만 하면 언제라도 전쟁이 재개되는 위험천만한 상태다. 어렵고 더디지만 평화로운 통일을 위해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 나아가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이라는 과제를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 이유다.

 혹자는 사전적 억지와 사후적 응징만으로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소극적 평화며 불안정한 평화일 뿐이다. 도발 의지가 있음에도 응징이 무서워 도발하지 않는 것은 절반의 평화다. 막강한 군사력과 과감한 응징으로 팔레스타인의 도발을 억지하는 이스라엘의 평화는 남녀 모두 군대를 복무해야 하고 일상에서 테러의 위험을 안고 살아야 하는 불안정한 평화다. 갈등의 원인을 해소함으로써 도발 억지를 넘어 도발 의지 자체를 없애는 것이야말로 적극적 평화이자 안정적 평화다.

 이번 휴전선 긴장사태는 통일을 위해 평화가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확인하는 계기여야 한다. 단순히 지뢰 도발과 확성기 방송만의 이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와 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 돼야 한다. 나아가 평화의 물적 토대인 화해협력의 남북관계를 재개할 수 있는 첫 단추가 돼야 한다. 평화는 주저해서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위 글은 중앙일보 2015년 8월 26일(수)자 29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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