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칼럼] 최동호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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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08.17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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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진찬을 축복하는 시

  어머니 혜경궁의 장수를 빌다

  내외 귀빈 ‘꽃 핀 숲의 모임’ 비유
 
  잔치의 풍경, 한 폭 그림처럼 표현
 
  반대파에겐 ‘왕의 위용’ 한껏 과시

  1795년 을묘년 원행 제5일 윤 2월 13일은 회갑연이 벌어진 날이다. 잔치를 위해 종친이나 대신은 물론 사도세자 직계 가족이 모두 봉수당 앞마당에 좌정하였고 마당 가운데 기생과 무희들이 춤을 추고 노래하여 축제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능행도의 봉수당 진찬도를 보면 건물에 휘장을 하고 마당 가운데 붉은 옷을 입은 무희들이 춤을 추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풍류가 끝난 다음 장수와 복록을 비는 시를 정조가 지어 바치고 신하들도 이를 차운하여 혜경궁의 장수를 비는 시를 짓도록 했다. 다음 시는 정조가 어머니의 장수와 복록을 빌며 쓴 시다.

  크나큰 복록으로 하늘의 명을 새로이 하라 祿穰穰 命新

  생황 퉁소 불어 대어 청춘이 머물러 있고 鳳笙鸞吹駐靑春
 
  땅은 관화에 부합해 삼축 소리 비등하니 地符觀華騰三祝

  해는 유홍절에 이르러 육순에 올랐도다 歲屆流虹 六旬

  내빈 외빈은 그대로 꽃 핀 숲의 모임이요 內外賓仍芳樹會

  동반 서반은 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東西班是勝花人

  해마다 오늘과 같이 즐겁기만을 원하노니 年年只願如今日

  장락당 가운데는 술이 몇 순배나 돌았는가 長樂堂中酒幾巡

  화성에서 진찬(進饌)하는 날에 읊조리어 잔치에 참여한 여러 신하에게 보여 만 년 축복의 정성을 부치는 바이다.

  시를 보아 봉수당과 그 옆 건물 장락당에서도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으며 양쪽 모두 내외 귀빈들이 둘러앉은 모습을 ‘꽃 핀 숲의 모임’이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뛰어난 표현으로 이 잔치의 풍경을 한 폭의 그림과 같이 그리고 있다.

  잔치는 날이 저물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행궁 건물 사면에 홍사초롱을 걸어 잔치 마당이 대낮 같은 휘황함을 자랑했다고 한다. 제3행 관화의 ‘삼축’은 요 임금이 화 땅에 구경 갔을 때 사람들이 ‘수(壽), 부(富), 다남자(多男子)’로 요 임금을 축복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현재 장락당 옆에는 이날 잔칫상이 재현됐다. 아마도 당시 차릴 수 있는 최고의 산해진미가 진열되어 후세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날의 잔치는 정조가 왕위에 올라 자신의 한을 풀고 반대파들에게도 한껏 자신의 위용을 과시한 축복의 날이었다. 왕권이 태양처럼 정점에 이르러 정조는 해마다 오늘과 같이 즐겁기를 바랐을 것이다.

 <위 글은 경인일보 2015년 8월 17일(월)자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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