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칼럼] 이수훈 교수
[경향신문 칼럼] 이수훈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08.1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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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평화 메시지 빠진 8·15 경축사

  그제 박근혜 대통령의 8·15 경축사가 있었다. 광복 70주년에 발표한 경축사여서 안팎의 관심이 컸다. 경축사는 관례적으로 남북관계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왔기 때문에 대북 제안 관련 기대도 없지 않았다. 남북관계가 악화돼 있는 상황에서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바람을 가진 사람들은 기대하는 바가 컸다.

  박 대통령 경축사가 기대했던 정도의 울림은 주지 못했지만 무시할 수 없는 내용들을 담고 있기에 몇 가지 주문을 덧붙이고자 한다. 경축사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대장정’에 나설 다짐을 밝히면서 경제 재도약이라는 과제를 제기한다. 이 과제의 적절함과 절박함에 대해서는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다. 다만 지금 안팎의 위기에 당면한 한국 경제의 중·장기적 돌파구로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뉴 프런티어 마련을 주문하고 싶다. 이는 박 대통령이 제기해 공감을 불러일으킨 ‘통일대박론’과 동일선상에 있는 발상이며, 새 경제 패러다임으로 경축사에서 강조한 ‘창조경제론’과도 무관치 않다. 평화통일의 과정으로서 남북경협의 진전일뿐더러 꽉 막힌 한국 경제의 숨통을 터주는 처방으로서의 실리적 의미라는 점에서 일석이조라 하겠다.

  박근혜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도는 지금 남북관계가 이명박 정부 임기 말로부터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물론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이라는 대형 악재가 있었고,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 일방적 철수와 그 후폭풍이 시작부터 꼬이게 만들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 정부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터야 할 임무를 지니고 있다.

  2015년 8월 남북관계가 예사롭지 않다. 남북이 실랑이하고 티격태격하는 것도 우려할 수준인 데다 군사적 긴장이 너무 높다. 평화통일이란 목표와 현실적 거리감이 너무나 크다. 당장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북한의 지뢰 도발에 대한 대응으로 우리 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대북전단 날리기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북한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것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한 심리전이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군은 “중단하지 않으면 무차별 타격하겠다”고 나섰다. 게다가 오늘부터 한·미 간의 연례 ‘을지프리덤가디언’ 합동훈련이 실시된다. 그제 북한 국방위원회는 “훈련을 강행하면 군사적 대응은 거세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 말들이 설사 공갈·협박에 그친다 하더라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위협임에 틀림없다.

  전쟁을 하자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이런 위험한 정세를 타개할 돌파구가 나와야 했는데 경축사에 그런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언제든지 대화할 수 있으니까 당신들이 준비되는 대로 나오라는 것인데, 다시 공을 북한으로 넘겨버린 셈이다.

  이 밖에도 경축사에는 다수 대북 협력 프로젝트들이 들어 있다. 비무장지대(DMZ) 생태평화공원 조성,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 유라시아 협력, 이산가족 연내 일괄 명단 교환, 금강산 면회소 수시 상봉, 자연재해 및 안전 협력,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문화·체육 교류 등. 어느 것 하나 북한의 협력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들이다. 북한의 협력은 우리 측의 “유연한 대응”이 발휘될 때 기대할 수 있다. 엄격한 상호주의 자세로는 협력이 안된다.

  단임제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에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다. 경제살리기 같은 과제는 유·무능을 떠나 정부가 하기 어렵게 돼 있다. 내부 개혁도 저항에 부딪혀 좌절하기 일쑤다. 그러나 대북정책은 지도자의 의지만 있다면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도 할 수 있고, 경협에도 진전을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여러 환경이 대북정책을 추진하기에 유리하다. 평화통일은 그 길이 ‘대장정’만큼 험난하겠지만, 진정한 광복의 당위로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터이다.

 <위 글은 경향신문 2015년 8월 17일(월)자 31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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