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김용복 교수
[한국일보 칼럼] 김용복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07.2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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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혁, 마지막 기회를 살리자

  지난 3월 여야합의로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발족하면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도 개혁을 포함한 좀더 근본적인 정치개혁을 바라는 기대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한 기대와는 멀어져 갔다. 성완종 게이트, 메르스 사태 등으로 정치권의 부정부패와 무능만 부각되고 정치불신이 심화되는 가운데 차분한 제도개혁의 논의는 실종되어 버렸다. 이러다가는 아무런 제도개혁없이, 어쩔수 없이 선거구 재획정 시늉만 하다가 내년 총선을 맞이하게 될 것이란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야 정당들은 나름의 혁신과 변화로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시선은 그리 고운 편이 아니다. 새누리당은 당청갈등, 계파갈등이 폭발직전까지 갔다가 유승민대표의 사퇴로 불안정한 봉합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혁신위 활동을 둘러싸고 잠복된 계파갈등이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고, 신당의 움직임 등으로 정당의 지속성마저 의심이 되는 상황에 직면에 있다. 심상정 대표체제로 정비한 정의당 등 진보진영의 정당들은 대통합 논의와 선명성 경쟁을 둘러싸고 분주하지만, 그 파급은 미미한 형편이다.

  정당의 변화와 혁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정당혁신보다 더 급한 것은 선거제도의 개혁이다. 경기에 이기기 위해 좋은 선수를 선발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경기의 규칙이 불공정하거나 좋은 선수들이 잘 뛸 수 없게 하는 경기의 규칙이 있다면, 좋은 선수를 선발하더라도 좋은 경기를 치를 수 없다. 정당의 혁신은 각 정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체질을 바꾸고, 좋은 후보자를 공천하기 위해 행하는 각고의 노력들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당정치, 의회정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정치인, 전문가, 국민들이 대체로 공감하는 상황이다. 정당의 혁신이 좋은 선수를 선발하기 위한 각 정당의 노력이라면, 선거제도의 개선은 좋은 경기 결과를 낳기 위한 경기규칙의 개선이다.

  6월 25일~7월 2일까지 실시한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의 정당, 선거관련 전문가 조사결과도 이를 보여준다. 조사에 응한 전문가중 72.1%는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변경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71.2%는 비례대표제를 확대·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비례대표 54석을 유지한 채 권역별 비례대표를 도입하는 것에는 68.5%가 반대하였고, 권역별 비례대표를 도입하려면 지금보다 비례대표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82.9%였다. 이를 위해서 현재보다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고 77.5%가 응답하였으며, 71.2%는 총 의석수가 최소 330석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응답하였다.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활동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최근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정치개혁의 의제가 기술적인 선거구 조정문제로 협소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선거제도의 개선과 의원정수의 조정이라는 제도개혁의 논의가 선행되면 선거구 조정과 획정은 자연스럽게 정리될 수 있는 문제이다. 현재 선거구획정위원회가 8월 13일까지 선거구 획정기준을 정해 제출해달라고 정개특위에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면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이를 토대로 10월 13일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일정에 따르면, 심도 있는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하기에는 시간이 매우 제약되어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정치권, 언론, 학계, 시민사회에서 많은 논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여 왔다. 빠듯한 일정이지만, 정개특위에서 좋은 경기 규칙을 만드는 논의에 집중해 합의된 결과를 보여 주었으면 한다. 각 정당은 혁신과 변화로 좋은 선수를 선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모처럼 맞은 정치개혁의 기회가 좋은 경기의 결과를 낳을 수 있도록 끝까지 희망을 갖고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위 글은 한국일보 2015년 7월 22일(수)자 31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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