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07.1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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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과 ‘저녁이 있는 삶’‘삼식이’ 안 되려 요리 배우는 아버지

  취업·연애 등 포기한 ‘오포세대’ 자식

  부자가 퇴근해 집밥 먹는 저녁 언제쯤

  언제부터인가 TV채널마다 음식이 넘쳐난다. 그중에서 ‘집밥 백종원선생’은 연일 상종가다. 바야흐로 ‘집밥’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선생의 상종가는 집밥 신드롬까지 만들고 있다.

  선생은 집밥에 설탕을 당당하게 사용한다. 흰설탕이나 갈색설탕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뭔가 있어 보여서’ 갈색설탕을 쓴다고 한다. 설탕을 폭탄처럼 투하하는 선생의 요리는 신성불가침 했던 어머니들의 주방을 단숨에 해체시켜버렸다. 내 가족의 건강을 위해 MSG의 침입을 불사하던 어머니들이 선생의 요리 앞에 쉽게 무장해제 돼버렸다.

  이런 현상은 등샤오핑(鄧小平)이 중국의 경제회복을 위해 내걸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 떠오를 정도다. 어머니들은 말한다. 흰설탕이든 갈색설탕이든 맛있으면 최고라고. 괜히 설탕으로 시비를 걸다간, 당신은 뭐 할 줄 아는 것이 있냐는 핀잔이 돌아오기 일쑤다.

  선생의 화려한 등장 배경에는 삼시세끼의 ‘차줌마’란 마중물이 있었다. 만재도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솜씨는 대단했다. 시청자들의 감탄사는 그의 음식보다 ‘대령숙수’를 뺨치는 능력에 있었다. 우리 가정은 저런 남편, 저런 아빠를 기다려 왔을 것이다. 차줌마에 이은 집밥 선생의 등장은 사뮈엘 베케트가 끝없이 기다렸던 ‘고도’(Godot)의 출현이라고까지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결과 흰 모자를 쓴 세프들의 고급요리 시대는 갔다. 늘 피자, 햄버거, 불고기 등의 ‘외식’을 외쳤던 어린아이들까지 합세해 집밥을 외친다. 앞치마 두른 아버지가 마술처럼 척척 해주는 집밥을, 마치 한 번도 집밥을 먹어보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집밥 요구 뒤에 ‘슬픈 초상’이 있다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시대 ‘고개 숙인 남자’들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가족계획정책이 시행된 1963년까지 태어난’ 베이비부머(Baby Boomer)는 우리 시대의 경제동력이었다. 한국고용정보원 집계에 따르면 2012월 7월 현재, 베이비부머는 729만 명에 달했다. 그 맏이인 1955년생이 올해 만 60세로 직장에서 은퇴를 시작했다. 앞으로 해마다 은퇴자의 행진은 계속될 것이다.

  은퇴자들이 집에서 삼시세끼를 챙기면 ‘삼식이’란 이름이 붙는다. TV속 삼시세끼는 인기 프로그램이지만 우리집 삼식이는 용서되지 않는다. 그래서 퇴임 전에 몰래 음식학원에 다니는 아버지가 많이 생겼다고 한다. 집밥은 퇴임 후에까지 제 자리를 지키며 살아남기 위한 아버지의 ‘생존전략’인 셈이다.

  베이비부머의 자식들은 메아리를 뜻하는 ‘에코(echo)세대’라고 한다. 1979년에서 1992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다. ‘베이비붐 세대가 메아리처럼 다시 출생 붐을 일으켜 태어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3년 10월 통계청 기준으로, 에코 세대는 천만 명이 넘었다. 이는 전체 인구의 20% 넘게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메아리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그들이 바로 취업과 결혼, 출산에다 연예와 내집마련을 포기했다는 ‘오포세대’다. 현재 우리 사회는, 베이비붐세대는 직장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에코세대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치열하게 ‘전쟁중’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인 이 두 세대 사이의 양극화는 한국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낼 것이다.

  집밥 뒤에는 은퇴한 어느 정치인이 내걸었던 ‘저녁이 있는 삶’이란 말이 사무친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퇴근해 함께 집밥을 먹는 그런 저녁은 요원한 것일까? 국민이 열광하는 집밥과 한국의 대통령, 한국의 정치의 온도 차이는 너무 크다. 집밥 한 그릇보다 못한 현실 정치를 탓하는 말이다.

 

<위 글은 경상일보 2015년 7월 17일(금)자 19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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