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04.2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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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춘서(春序), 꽃들의 반란

 

  ‘춘서(春序)’란 옛말이 있다. 봄에 꽃이 피는 순서를 말한다. 매화가 첫 신호를 보내면 춘서에 따라 차례차례 꽃이 피었다. 하지만 그 질서가 무너진 지 오래다. 요즘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한꺼번에 꽃이 핀다. 꽃이 질서 있게 필 필요는 없지만 이런 무질서가 새로운 질서가 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이건 환경이 변했다는 경고이다. 말하자면 온난화에 대한 ‘꽃들의 경고’다.

  춘서가 질서였을 때와 지금은 일기가 크게 달라졌다. 그 예로 울산 온산 앞바다의 ‘목도상록수림’을 들 수 있다. 목도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1962년이다. 동해안에서는 가장 북쪽에 있는 상록활엽수림이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이 근거는 일제강점기인 1941년 일본 학자 우에키 호미키가 설정한 난대성 상록활엽수의 북방한계선에 따른 것이었다. 현재 난대성 상록활엽수의 동해안 북방한계선은 울산을 떠나 국도 31번을 따라 포항을 지나가고 있다. 물론 점점 북상할 것이다. 울산시는 목도에 대해 오랫동안 출입을 통제하고 있지만 기온변화란 불가항력에 의해 목도상록수림이 천연기념물에서 지정해제가 될 수 있다.

  경남 창녕의 우포늪은 백조 도래지로 보존하기 위해 1962년 천연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환경변화에 따른 철새 감소로 1973년 지정이 해제됐다. 우포늪은 그 뒤 많은 투자와 노력 끝에 2011년 천연기념물 제524호로 다시 지정됐다. 천연기념물 제15호가 제524호로 바뀐 일에서 자연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와 그것을 복구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막대한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여러해 전에 해양문화재단의 일을 도울 때다. 독도 해저탐사에서 제주의 어종인 ‘자리돔’이 서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적이 있었다. 제주의 물고기가 독도까지 주소를 옮겨 살고 있었다. 반란은 꽃뿐만 아니다 물고기도 한다는 말이다. 이웃 도시 경주에서 제주가 주산지인 한라봉이 재배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반도는 이미 아열대 기후로 변했다. 아열대란 열대와 온대의 중간지역이다. 결국 아열대는 열대로 진행될 것이다. 그런 땅에 춘서란 잣대는 낡은 유물이다. 꽃은 우르르 피었다, 우르르 진다. 지금의 일기 불순한 봄날이 복일지 모르겠다. 곧 길고 긴 열대야의 여름이 진군해올 것이다. 필자는 오래 전에 아열대 현상에 대해 ‘여름과 겨울이 남고 봄과 가을은 두 계절의 부록처럼 남을 것이다’는 예상을 시로 발표한 적이 있다. 예상이 훨씬 빨리 적중되고 있어 두렵다.

  오래전 울산대에서 식물원을 개원했을 때 일이다. 그때 ‘엔젤스 트럼펫’이란 통화식물목 가지과 독말풀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을 난생 처음보고 신기해했던 적이 있었다. 엔젤스 트럼펫이란 이름은 천사가 긴 나팔을 입에 물고 소식을 전하는 모습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었다. 이제는 이 꽃나무는 도로변 회원에서 흔하게 판매되며, 아파트 베란다에서 쉽게 키울 수 있는 흔한 품종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고위도 상층 대기 중에 나타나는 현상인 오로라가 백두산이나 신의주 등지에서 볼 수 있다는 외신의 보도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빨리 피었다 더 빨리 지는 꽃들을 보면 지구를 뜨겁게 만든 사람의 죄에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열대화는 토종의 씨를 마르게 하고 외래종이 늘어난다는 경고는 이미 20세기말에 나왔다. 꽃들은 살기 위해 꽃을 피운다. 생존에 바쁜 꽃에게 춘서를 요구할 수 없는 봄의 정취가 아쉽다.

  하늘의 일인 일기가 늘 고를 순 없다. 바야흐로 여러 꽃들이 절정인 때에 비바람과 사월 추위에 불순한 날이 계속됐다. 꽃들이 다 피어버린 요즘 꽃샘추위라 이름 할 수조차 없는 사월의 한기에 지난 주와 이번 주에 힘든 시간이 많았다. 꽃들의 반란 속에, 누구에게도 ‘알뜰한 맹세’를 하지 못한 채 또 한 해의 봄날이 서성이다, 이미 봄날이 다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위 글은 경상일보 2015년 4월 17일(금)자 19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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