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시론] 김근식 교수
[중앙일보 시론] 김근식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02.0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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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준비, 말로만 할 것인가

 
  새해 벽두부터 통일 준비가 한창이다. 지난해 통일대박론과 통준위 출범에 이어 올해도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대북정책의 핵심 화두는 통일 준비에 맞춰져 있다. 새해 업무보고에서도 정부는 평화통일기반구축법을 추진하고 부처별 통일전담관을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남북 공동의 다양한 행사와 협력사업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그런데 잇따른 통일 준비사업들을 보면서 실제 상황이 아니라 ‘말의 성찬’에 그치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왜일까.

  당장 정부가 밝힌 통일 준비사업들은 대부분 북한과의 협력과 대화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남북 대화는 말만 무성할 뿐 재개되지 못하고 있고 남북관계는 여전히 냉랭한 상태다. 서로 엇박자를 내며 기싸움에 몰두하고 있는 지금의 남북관계에서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광복 70주년 남북공동기념위원회는 과연 구성이나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말이 아니라 실제적인 통일 준비라면 당연히 남북의 화해와 협력과 교류와 상호 이해가 충분히 진행되는 과정과 맞물려야 한다. 통일은 최종의 결과물로 완성되지만 통일 준비는 그에 이르는 점진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통일 준비 노력들이 민생·환경·문화의 3대 통로에 맞춰져 있는 것도 점진적인 남북 협력과 관계 개선을 통해 통일 준비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과정으로서의 통일’ 접근법이다. 관계 개선과 화해 협력의 과정이 전제되지 않는 통일 준비는 전직 통일부 장관이 일갈한 대로 ‘일층도 짓지 않고 이층을 짓는 격’이다.

  물론 점진적 통일 과정을 고려하지 않고 북한 붕괴와 급변 사태를 전제한 통일 준비도 한 방법이지만 이는 지금 상황에서 당장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화해 협력과 관계 개선으로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지 않고서는 평화적 흡수통일이 불가능하다. 결국 통일 준비가 공허한 메아리가 아닌 현실의 실제 상황이 되려면 남북관계 개선과 화해 협력이 병행돼야 하고 이는 곧 남북관계 정상화가 통일 준비의 사실상 첫 시작임을 의미한다. 통일 준비가 주장이 아닌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의 실제적 노력을 가시화하는 것이 필요조건인 셈이다.

  대화의지를 서로 확인하고도 여전히 대화가 성사되지 못하는 이유는 상호 관심사항에 대한 역지사지의 입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의 소프트한 협력 제안은 거부하고 정치·군사 이슈를 대화 의제로 요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북의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체제 대결 중단 요구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에서 상대방 주장은 진정성이 없고 내 제안만을 수용하라면 대화는 성사되기 힘들다. 따라서 지금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상호 관심사항을 모두 협상 의제로 올려놓는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 북은 박 대통령의 대북 제안을 받아들이고 우리 역시 북의 정치·군사적 의제를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대화 재개의 여건 조성을 위해 한·미 군사훈련 일시 중단에 대해 우리가 열린 접근을 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연례적인 군사훈련을 영구 중단이 아니라 한 해 중단한다고 해서 우리 국가 안위에 중대한 손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1992년 북·미협상 진전에 따라 팀 스피릿 훈련을 일시 중단한 전례가 있다. 군사훈련 중단은 논의조차 불가하다는 입장은 사실 지나친 근본주의일 뿐이다.

  전단 살포에 대해서도 전단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 대결 중단과 흡수통일 반대라는 북한의 정치적 요구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북이 전단 살포 문제를 이슈화하는 이유는 사실 전단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체제 대결 중단이라는 자신의 요구에 박근혜 정부가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라는 입장이다. 남북은 지난해 고위급 접촉에서 상호 비방 중단을 합의한 바 있고 이에 대한 이행의지의 바로미터로 북은 전단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비방 중단 합의를 재확인하고 이행하겠다는 공식적 입장을 밝힌다면 전단 살포 논란은 상당 부분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

  진정한 통일 준비를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는 것도 필요하다. 이미 노태우 정부 이후 우리 정부의 통일 방안은 평화공존에 의한 점진적 과정으로 공식화돼 있다. 흡수통일 반대를 표명한다고 해서 역사적 흐름이자 최종적 결과로서 흡수통일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흡수통일을 정부가 목표로 해야만 흡수통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북이 흡수통일 반대를 요구한다면 얼마든지 말로는 해줄 수 있어야 한다. 통일을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훌륭하고 현실적인 통일정책임은 통독 과정에서 확인한 바 있다.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세 언급이 당시 최악의 남북관계에서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생뚱맞았는지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지금 박 대통령의 통일 준비가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위 글은 중앙일보 2015년 2월 2일(월)자 29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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