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인터뷰] 박재규 총장
[중앙일보 인터뷰] 박재규 총장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01.03 12: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차 정상회담도 비공개 접촉 통해 내밀히 진전시켜

  “박근혜 대통령이 자주 사용하는 말을 빌리면 분단 70년인 올해가 남북관계의 골든타임이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일 신년사에서 제안한 정상회담의 불씨를 잘 살리려면 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풀 가동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으로 사상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2000년 6월) 추진위원장을 지낸 박재규(71) 경남대 총장이 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강조한 말이다. 박 총장은 3차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여러 가지를 조언했다.

  박 총장은 “정부가 비밀접촉을 안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지만 ‘비밀·비선접촉’과 ‘비공개 접촉’은 다르다”면서 “비공개 접촉을 잘 활용해 진전이 있으면, 그때 가서 박 대통령이 신뢰하는 사람을 특사로 내세워 합의한 다음에 회담을 마무리하는 것이 시간도 줄이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두 차례의 정상회담도 비공개 접촉을 통해 정상회담의 개최와 진행 등에 대해 내밀하게 협의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정상회담이 매우 중요하지만 의지만 갖고 되는 것은 아닌 만큼 절대로 서둘러선 안 되고 개최 자체에 급급해서도 안 된다”면서 “우리의 원칙과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에 흔들림 없이 기조를 유지해야 북한도 오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어렵사리 조성된 대화의 불씨를 살리려면.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드레스덴 선언(평화통일 기반조성을 위한 대북 제안) 등을 북한이 오해하지 않도록 정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김대중 정부 초기도 북한이 대북포용정책을 흡수통일로 오해했다. 당시 ‘속으로 칼을 품고 하는 협력 타령’이라며 흡수통일을 염려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해 3월 김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통해 흡수통일 배제와 경제지원을 약속하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현재도 드레스덴 선언을 ‘흡수통일 망상’이라거나 ‘체제통일’이라고 비난하는데 2000년과 유사하다. 현재 상황을 정상회담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선 여러 채널을 통해 지속적이고 꾸준하게 설명하고 설득해 우리의 진정성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 통일준비위원회 활동도 북한은 흡수통일 시도라고 주장한다.

  “지금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북한의) 신뢰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북한 체제를 없애려 한다고 여긴다. 드레스덴 선언이든 통준위든 평화통일로 가기 위한 하나의 준비라는 것으로 북한이 우리의 진정성을 이해할 때까지 로 톤(low tone)으로 조용하게 준비해가는 게 낫다. 고위급 회담이든 실무회담이든 최고위회담이든 준비과정에 통준위가 지나치게 나선다면 북한이 정부의 진심을 이해하는 데 좀 시간이 걸릴 거다. 독일처럼 조용히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

  -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최고정책결정자, 즉 박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과 의지다. 정상회담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공감하는 국민의 지지와 관련국의 국제적 협력도 중요하다. 남북관계는 우리 내부만을 고려해선 안 되고, 국제적 차원에서 주변국과 협조하는 과정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토대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동서독은 통일 이전에 7차례의 공식 회담과 6차례의 비공식 정상 간 만남이 있었다.”

  - 우발적 충돌로 대화국면이 물거품되지 않으려면.

  “북한이 우리의 의지를 시험하기 위해 돌발적인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돌발상황 처리 문제와 한반도 평화정착, 남북관계 발전, 통일이란 큰 그림을 그려가는 것은 별개가 돼야 한다. 대북 삐라 등 북한을 자극하는 행동은 보다 큰 목표를 위해 유보하는 것도 방법이다.”

  - 외교안보라인에 조언을 한다면.

  “지난 정부처럼 비핵화 약속 없이는 관계개선을 안 하겠다고 하면 회담은 성사되기 어렵다.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자는 게 아니라 핵문제는 6자회담 틀 속에서 한·미 공조로 계속 설득하면서 동시에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투트랙 방식이다. 남북관계 역사를 보면 부수적 문제 때문에 본질적 문제가 오해를 받거나 진전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인사들이 불필요한 언행으로 북한이 오해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유관부처 합동으로 특별준비관리팀을 만들어 조용히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5·24 조치의 큰 틀은 건드리지 않더라도 이산가족의 정례적인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게 좋겠다.”

  - 북한이 궁지에서 벗어나려 대화를 제안했다는 시각도 있는데.

  “남북관계를 푸는 게 1석 3조가 될 거라고 판단했을 거다. 북한만 이득을 보는 게 아니고 우리도 남북관계가 풀려 금강산에서 원산, 나진~하산까지 연결되면 러시아·중국과 공단을 함께 개발할 수 있다. 가스관 연결도 같이 할 수 있다. 투자가 되고 일자리가 창출되면 큰 이익이다.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북한이 열리지 않으면 소용없다.”

◆ 박재규(71) 경남대 총장 =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을 계기로 이듬해 경남대 부설 극동문제연구소장을 맡아 약 40년간 남북 관계를 연구해 온 ‘북한학 1세대’ 학자. 김대중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99년 12월~2001년 3월)으로 남북 정상회담(2000년 6월)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1~4차 남북 장관급 회담의 남측 수석대표로 활동했다.

<위 글은 중앙일보 2015년 1월 3일(토)자 05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