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12.1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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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추운 맛 어디 없습니까?

  겨울은 추워야 맛이라고 했습니다. 그 맛 좀 봐라는 듯이 이번 주엔 강한 한파가 한반도를 덮쳤습니다. 날씨가 경제가 되고 뉴스가 된지 오랩니다. 이번 한파는 생활섹션의 주요 뉴스로 계속 올라가 있습니다. 언론은 겨울추위가 ‘절정’이라고 비유합니다. 이육사 시인은 ‘절정’이라는 시에서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육사 시의 무지개는 다른 뜻을 가지고 있지만 이번 추위에 무지개가 뜬다면 그건 분명 강철로 만들어져 있을 것 같습니다.

  사흘은 춥고 나흘은 따듯하다는 우리나라 겨울철 날씨인 ‘삼한사온(三寒四溫)’을 구경하기가 어렵습니다. 삼한사온의 유래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조선시대에도 삼한사온을 부정하는 항의가 많았다고 합니다. 조선 숙종 때 문신인 채팽윤은 “극심한 추위가 4일째를 지나니 삼한사온의 이치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항의를 글로 남겼다고 합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한반도 겨울철 기온의 주연은 시베리아 기단의 강약과 형성 당시의 조건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베리아 고기압이 지속적으로 한반도에 찬 공기를 불어넣고 있기 때문에 강추위가 계속된다고 합니다. 해서 1월에 찾아올 엄동설한이 벌써부터 기세를 자랑합니다. 시베리아는 멀리 있는 북쪽으로만 생각했는데 한 하늘 아래라는 생각에 그 먼 거리감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추위에 우리 아이들이 문젭니다. 비만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아이들이 강추위에 속수무책입니다. 그냥 방안에 갇혀 지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밖으로 나갈 일이 있으면 옷으로 친친 감아 만든 눈사람 같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겨울의 맛 좀 보여줄 수는 없을까요?

  베이비붐 세대에게는 가난했지만 추워지면 즐기는 겨울놀이가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물이 있는 곳에 얼음이 얼면 그 위를 달리는 얼음지치기가 으뜸이었습니다. 칼날이 있는 스케이트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나무판자를 이어 보드형태의 사각형을 만들고, 그 아래 각목을 덧대 그곳에 긁은 철사를 펼쳐 나무판자스케이트를 완성했습니다. 우리는 그 위에 앉아 얼음지치기를 했습니다. 나무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아래에 못을 박아 요즘의 스틱처럼 썼습니다.

  얼음지치기의 고수는 나무판자 크기로 정해졌습니다. 판자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고수용이었습니다. 겨우 두발을 올려놓을 크기에 쪼그리고서 얼음판을 누볐습니다. 고수들은 얼음에 구멍을 내고 얼음이 녹아 물컹물컹한 위험구역인 일명 ‘고무다리’를 만들어 놓고 나름대로 모험을 즐겼습니다. 그러다 얼음이 깨져 고무다리를 통과하지 못하고 얼음물에 빠지는 몇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종일 얼음을 지치다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이불 속에서 꽁꽁 언 몸을 녹일 때도 참 좋았다는 행복한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겨울이 주는 추운 맛은 추운 맛대로 뜨듯한 구들장에 몸을 녹이는 맛은 맛대로 겨울이 주는 맛이었습니다.

  시대가 변했고 아이들의 겨울놀이 콘텐츠가 변했습니다. 실내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는 붐이 대세입니다. 그러나 그 콘텐츠가 비싼 이용료 문제는 차치하고도 우리 도시에서는 즐길 수 없는 무용지물이기에 우리 아이들에게 사실상 겨울은 꿈이 없는 계절입니다.

  서울 63빌딩은 겨울에 한 번 비상구 계단을 개방한다고 합니다. 그 행사에 참여하면 1층에서 60층까지 계단을 밟고 올라가 63층에 오른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참여할 수 없고 룸메이트들에게만 자격이 주어지지만 국내 최대높이를 자랑하는 250m의 높이를 수직으로 오르며 한겨울 등에 땀이 쏟아지는 겨울의 맛을 만끽한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밖으로 나가게 할 겨울놀이가 필요합니다. 기우지만 겨울의 맛을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이 커서 지구의 온난화에 관심을 가질까 걱정입니다. ‘닭장’이라 불리는 아파트에 갇혀 더운 겨울을 보내는 아이들을 ‘와~’ 하고 뛰어나오게 할 겨울의 맛 어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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