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칼럼] 박태일 교수
[국제신문 칼럼] 박태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11.1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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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부산 지역과 한글 사랑의 전통

 
  전화를 끊고 나니 아쉽다. 얼굴을 맞대지 않고 속내를 다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동래고교 교사였던 외솔 최현배를 중심으로 삼은 기념물을 부산에 마련했으면 하는 뜻이다. 그 일에 글로 거들어 주기 바랐다.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청을 넣어 준 점은 고맙지만 간곡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글 청탁을 잘 물리치지 못하는 나로서도 예외다. 그런데 내 생각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평소 국어학계 인사들의 지역 한글 사랑에 대한 전통 찾기나 그에 대한 연구가 소극적인 데 불만을 느꼈던 터다. 게다가 경남·부산의 한글 사랑 전통을 외솔 한 사람의 공으로 몰아가려는 듯한 분위기는 더 마뜩잖았다.

  최현배의 고향 울산에 세운 기념관은 그렇다 치자. 그럼에도 그 이름이 경남·부산의 오래고도 두터운 한글 사랑의 전통을 쓸어 담는 못이 될 수는 없다. 그의 학문적·대중적 명성은 나라 잃은 시대 연희전문 교수에서부터 시작해 광복기 미 군정청 문교부 편수국장으로서 누렸던, 국가 제도의 위세 중앙으로서 지닌 상징 권력이 큰 몫을 했다. 게다가 학연·지연이 거듭 거들었다. '조선어학회'를 실질에서 이끌고 개인적인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는 그가 아니다. 의령의 실천 지식인 고루 이극로였다. 마침내 제도권에 발 붙이지 못한 채 월북 국어학자로 내몰려 버린 이다. 그를 지운 채 최현배를 다룰 수는 없다.

  게다가 고루 둘레에는 나라 바깥에서 고심했던 기장 김두봉이나 홍원 교도소에서 원사한 김해 이윤재까지 든든하다. 그렇게 보면 울산을 포함한 경남·부산은 근대 시기 어느 곳보다 빛나는 한글학자를 꾸준히 배출했고 그 영향 안에 있었다. 광복을 맞자 한글 맞춤법과 문법 학습은 온 나라에서 중요 과제로 떠올랐다. 그것을 지역 차원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이끌었던 대표적인 곳이 경남·부산이다. 앞선 그들의 본과 가르침 덕분이었다. 도청 소재지 부산은 그 중심지였다. 한글 배움 모임과 강습회가 지식 청년에서부터 학교 교사, 시민 모임 수준에 이르기까지 거듭되었다. 그에 맞추어 교재도 몇 차례 찍었다.

  산청 출신 유열이 수산전문학교에 적을 두고 일을 앞서서 이끌었다. 초량에다 야간 중학교 과정 배달학원을 차렸다. 부산의 초등, 중등학교 한글 교사들이 거기에 힘을 보탰다. '한얼 몯음'까지 만들었다. 한글을 닦고 갈아 넓히며 역사를 캐고 가다듬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좋은 문화를 배워 우리 문화를 높이는 일에 이바지하기 위한 일을 목표로 삼은 모임이었다. 뒤에 영남국어학회로 발전했던 '한얼 몯음' 활동에 김천 정렬모와 이극로까지 부산 걸음을 마다하지 않았다. 부산의 첫 청소년 매체인 순간 '학생동무'에다 기관지 '한얼'이 경남·부산 한글 사랑의 빛나는 유산으로 남게 된 까닭이 그로 말미암는다.

  한글촉진회 경남지부도 한글 사랑에 애썼다. 제헌 국회의원인 의령 안준상이 지부장을 맡았던 모임이다. 울산의 청년 시인 박종우도 이른바 학병에서 돌아와 힘을 실었다. 유열의 제자 장삼식에다 박지홍·정용수·김갑수와 같은 이가 나란히 팔을 걷어붙였던 시기다. 그러나 그들이 애써 만들었던 한글 배움 관련 교재나 잡지들은 아직까지 일반은 물론, 학계에서조차 전모를 알린 적이 없다. '학생동무' '한얼'은 물론이고, '한글나라''한글 속성' '한글의 문법과 실제' '용비어천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울리는 부산의 근대 출판 문화재가 아닌가. 그 실재조차 이제는 몇 사람의 귀동냥으로만 남은 것들이다.

  한글이고 한글문학이고, 기념관 세우고 빗돌 올리는 일로 개인의 박제화, 신화화에는 성공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구명이나 바른 현양과는 어긋난 일처리이기 쉽다. 종교에서 말하는 신앙 선조와 마찬가지로 지역에도 한글 사랑을 실천한 선조가 있기 마련이다. 그들의 전통을 되살리고 족적을 되짚는 일이 가장 바쁠 수 있다. 나라 잃은 시대 경남·부산의 한글 사랑 선조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일을 민족 항쟁으로 생각했다. 나라와 겨레의 흥망성쇠가 말글의 흥망성쇠에 있다고 본 언어민족주의자였다. 그들을 단순 국어학자로만 다루다가는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오늘날 세계화 물길은 한글을 가장자리로 더욱 밀어낸다. 한글 순화의 깃발도 내린 지 오래다. 이럴 때일수록 멀리 보고 마땅한 길을 고심해야 하리라. 모든 일에는 선후완급이 있다. 게다가 남의 돈과 힘을 빌려 할 수 있을 일에만 눈을 둔다면 제대로 해내기란 처음부터 틀렸다. 내 손해 보지 않고 얻을 값어치란 보잘것없는 경우가 태반인 까닭이다. 그러니 바깥보다 안으로 눈을 돌리고, 쉬운 일보다 남들 손 놓는 일에 뜻을 둘 일이다.

  경남·부산에서 이름 없이 묻힌 한글 사랑 선조의 우뚝한 전통을 제대로 되살리고 쓰다듬으며 그것을 뒤 세대의 마음에 아로새길 일에 힘껏 나설 주체는 누구더란 말인가.

<위 글은 국제신문 2014년 11월 13일(목) 31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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