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일 교수, 제14회 최계락문학상 수상
박태일 교수, 제14회 최계락문학상 수상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11.0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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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현대…그 접점에서의 울림

 
  "요절하신 최계락 선생을 기리는 상이니만큼 그리움, 애틋함이 앞선다. 문학상 수상도 감사하지만, 사람들이 먼 훗날까지 읽고 느끼면서 감동할 수 있는 시를 쓰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제14회 최계락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박태일(60·경남대 교수) 시인. 최근 10년가량 본업인 학문에 집중하면서 잠시 시를 놓고 있었기에 이번 수상이 뜻밖이었다고 전했다. 수상집으로 선정된 '옥비의 달'(6집)은 몽골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발간한 기행시('달래는 몽골 말로 바다'·2013)를 사이에 두고 12년에 걸쳐 쓴 시를 묶어 펴냈다.

  박 시인은 "언어의 쓰임새에 고민을 많이 한다. 말을 다듬고 고르고 쓰는 데 엄격하다"면서 "'인지상정'이라는 말을 즐겨 쓰는데, 인정의 세계를 다듬은 언어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고 자신의 문학세계를 설명했다. '전통적 정서를 현대적 감각과 언어로 표현한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시를 통해 전통성과 현대성의 접점을 보여주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수상 시집에서 '사랑을 보내 놓고' '구름 마을' 등에 높은 점수를 줬다.

  이번 시집에서는 부산의 특정 장소와 관련한 시가 많다. 범일동 안창마을('구름마을'), 다대포 몰운대성당('언덕 위에 성당이'), 금정구 영락공원묘지('처서') 등 부산의 숨어 있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소가 시인의 눈에 어떻게 비치고 묘사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박 시인은 "문학을 선택한 후 '최선을 다했나'는 물음에서 늘 부족함이 느껴진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문학 사랑, 문학 줄기를 꾸준히 키워나가도록 애쓰겠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강가 마을(경남 합천 황강)에서 시심을 키우며 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그의 7집, 8집은 합천과 중국 교포를 다룬, '가장 가깝고, 가장 먼 고향'에 관한 시가 될 것이다.


처서 /박태일

  아부지 이제 가입시더
  술을 껴입은 채 쓰러진 아버지
  아버지 쓰러뜨린 무슨 짐을 제가 다 질 듯
  소년 상주가 운다

  비죽비죽 비가 솔잎을 씹으니
  나무마다 쓰린 날
  앞물 뒷물 다 비운 채
  닻을 내린 산등성

  영락 공원묘지
  저승에서 밟을 영원한 낙이란 어떤 것인가

  아부지 이제 가입시더
  갈 데도 없을 듯한 이승
  찬 바닥을 쪼고 있는
  까치 두 마리.
 

 

 

  최계락문학상은 부산에 터를 둔 대표적인 문학상 가운데 하나다. 최계락 시인과 나 사이에 어떤 연이 있을까. 별로 없다. 나는 시인의 고향 진주 쪽 사람도 아니다. 시인이 일했던 언론계에 머물고 있지도 않다. 게다가 나는 심사위원으로 불려간 적도 없다. 그런데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최계락은 언어의 표현미에 뛰어난 감각을 보여 준 시인이다. 시의 처음과 끝은 마침내 언어라는 점에 동의하는 나로서는 시인의 작품이 지닌 그러한 간결한 언어 구사에 남다른 감개를 지닌 터다.

  게다가 최계락이라는 이름은 내 청소년 시절, 몇 되지 않는 시인의 모습으로 각인됐다. 아버지께서 합천중학교에서 부산고교로 옮기시고, 내 부산 시절이 시작된 뒤부터 만난 적은 없지만 막연히 부산의 시인 가운데 중요한 이로 치고 있었다. 구연식 정영태 조유로 한찬식 이민영…. 최계락과 함께 문학 소년의 마음에서 부산의 공기를 같이 숨 쉬었던 몇몇 시인의 이름이다.

  고교 시절, 시인의 별세 이듬해 친구를 앞세워 대신동 공설운동장 아래쪽 시인의 자택으로 찾아갔다. 시인이 떠나버린 거실에서 만났던 시인의 아내와 딸, 영락공원 시인의 무덤. 그 인연이 언젠가 제대로 된 최계락문학전집이 나와야 하리라는 묵은 바람으로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최계락 시인과 깊지는 않지만 가늘고 먼 연이 이어져 온 셈이라 할까.

  최계락문학상을 빛낼 더 좋은 시집이 많았을 터인데, 내 것에 낙점하신 심사위원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마흔한 살, 참으로 아까운 나이에 이승 일을 덮은 시인보다 나는 어느새 스무 해를 더 살고 있다.

  최계락 시인의 이름과 부산 지역시에 부끄럽지 않은 문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 마흔 해도 더 넘는 옛날, 시인의 자택에서 만났던 시인의 가족을 수상식장에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 박태일 시인 약력

  -1954년 경남 합천 출생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 경남대 국문과 교수.
  -시집 '그리운 주막' '약쑥 개쑥' '풀나라' 등. 연구서 '마산 근대문학의 탄생' 등 다수
  -김달진문학상, 부산시인협회상, 이주홍문학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

<위 글은 국제신문 2014년 11월 7일(금)자 16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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