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와의 대화] 박재규 총장
[원로와의 대화] 박재규 총장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10.08 08: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경남, 갈등 조정위 만들어 신공항·남강댐물 문제 풀어내야

 

 # 글로벌시대 한국의 선택


- 세계 트렌드는 다양성의 존중
- 보편적 가치 맞춰 균형 유지를

# 한류가 나아가야 할 길
- 대중적인 것에만 치중 아쉬움
- 과거와 현대 콘텐츠 접목 필요

# 사회 올바른 '큰 어른' 상은
- 상대 존중하며 쉼없는 자기반성
- 교황이 참다운 지도자상 보여줘

# 北 고위급 '깜짝 방문' 왜
- 남북대화·관계개선 의지 표현
- 정부, 민간차원 지원 허용해야

# 한반도 언제쯤 하나될지
- 통일은 이미 현실로 다가온 과제
- 신뢰·평화 바탕될 땐 '대박'될 것

# 수도권 집중 해소하려면
- 지역 스스로 자력갱생 노력 필요
- 광역지자체간 연대해 윈윈해야

 

  훤칠한 키에 세련된 몸동작, 칠순이 넘은 나이지만 첫 눈에 보기에도 신사라는 인상이 들었다. 러시아 극동연방대학교에서 열린 '제3차 APEC 고등교육 협력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뒷날이라 채 여독이 풀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걱정은 기우였다. 특유의 온화한 미소와 함께 말에는 힘이 실려 있었고 막힘이 없었다. 자신의 전공인 남북문제를 비롯해 지역의 구석구석에 대해서도 샅샅이 훑고 있었다. 다양한 직책수행을 통한 축적된 경륜과 식견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 짐작됐다.

  통일부장관을 지낸 뒤 대학으로 돌아와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는 박재규(71) 경남대학교 총장을 만났다. 영남권 신공항 건설과 남강물댐 부산 공급 등 갈등 조짐을 보이는 지역 현안사업에 대한 해결책과 좀처럼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남북 문제 등에 대한 의견을 물어 봤다.


-늘 바쁘시고 정열적으로 생활을 하시는 모습에 감명을 받는 분들이 많습니다. 근황은 어떠신지요.

▶요즘 한국사회에서 바쁜 사람으로 치자면 아마 '대학총장'일 것입니다. 정부의 대학구조개혁 방안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3년까지 16만 명의 대학 정원을 줄여야 합니다. 대학가에 초대형 쓰나미가 덮치는 형국이지요. 최근까지 정부가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평가에서 취업률이나 충원율 등 정량 지표 중심으로 한줄 세우기를 강요해 오다 보니, 대학의 건학 이념이나 전통을 반영한 특성화와 차별화 대학 육성 방책을 마련할 여유가 없습니다. 대학마다 그릇의 모양이나 크기가 다르지 않습니까? 요즘 저는 재직 중인 대학이 지역 최고의 명문사학으로 발전해 가도록 교육체질을 리모델링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총장님께서는 외국 방문도 잦으니 글로벌 시대의 움직임을 잘 파악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혹시 아직도 우리나라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다양성(diversity)'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세계의 트렌드는 다양성의 존중입니다. 불행하게도 현재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는 미국과 IS(이슬람국가)의 충돌, 우크라이나 사태 등도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양성은 차이성과 상대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사회 각계에서 다양성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때문에 한국은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세계의 보편적 가치 기준에 맞게 삶의 질서와 균형을 유지해 가고 있다 해도 될 것입니다.

-'한류'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나름 성과를 얻어낸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뭐가 달라져야 하는 것 일까요.

▶한류가 한국을 세계사회에 빠르게 진입시킨 것은 사실입니다. 큰 원동력이었지요. 그러나 그 한류의 콘텐츠가 노래와 춤, 드라마 등 너무 대중적이라는 여론의 지적에는 저도 동감합니다. 일본에 한류를 불러일으킨 것이 2004년에 방영된 '겨울연가'란 TV드라마라지요? 만 10년이 지난 지금 일본에서 '반한류' 바람이 불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한류에 대해 근원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유튜브 조회 수만이 한류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우리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건 아닌지 경계해야 합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로운 한류 콘텐츠는 우리 '옛 것'에 '현대'를 접목시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요즘 우리사회에는 갈등을 어루만지고 중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큰 어른이 없다는 말들이 나옵니다. 사회의 진정한 큰 어른은 어떤 자격을 갖춰야 된다고 보시는 지요.

▶제가 이런 것들을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인간관계에서 실망을 주지 않으려면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언행에 늘 주의하고 항상 반성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존중하고 자신을 반성하는 사람이라면 어느날 젊은이들이 바라볼 수 있는'큰 어른'이 되겠지요.

  저는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지켜보면서 지도자의 참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인간 삶의 보편적 가치와 기본에 충실한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회 각계에서 이런 가치를 실천하는 사회지도자들이 존중받는 풍토가 성숙되었으면 합니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과 남강댐 물 부산 공급 등을 두고 부산과 경남에서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원래 부산과 경남은 한 뿌리였는데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런 갈등이 풀리겠습니까.

▶ "신공항 문제는 하늘에서 보면 답이 있고, 남강물댐 부산 공급은 물처럼 흘러가다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언젠가 우리 대학에서 강의하는 시인이 말했습니다.

  부산과 경남지역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신공항과 물 문제 등으로 심한 갈등을 일어났습니다. 지역갈등 완화와 주민들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정부와 부산·경남은 객관적이고 전문성을 지닌 분들을 모아 '조정위원회'를 만들어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산과 경남은 미래를 함께 열어가야 할 진정한 이웃이 아니겠습니까.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총장님은 자타가 공인하는 이 분야 전문가이십니다. 인천 아시안게임 중인 지난 4일 이뤄진 남북고위급 인사들의 접촉에서 관계개선을 위해 조만간 고위급 회담을 열기로 했습니다. 국민들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경색국면이 이번에는 순조롭게 풀릴 것 같습니까.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을 북한이 흡수통일 전략으로 판단하면서 남북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핵실험과 천안함 폭침사건 등의 북한도발이 이어지면서 관계는 더욱 경색되었지요.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한 남북고위급 대표들은 남북관계의 경색국면을 풀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걸림돌이 앞길에 놓여 있기 때문에 성급한 기대는 삼가야죠. 관계개선을 위해선 남북은 진정성을 갖고 인내와 양보의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 가야합니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민간차원의 인도적 지원과 인적·물적 교류를 허용해야 합니다. 곧 열릴 고위급회담에서는 5·24조치,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재개 등을 비롯한 남북관계 현안해결에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한 때 우리 사회에서 유행어가 됐던 '통일 대박론'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십니까.

▶분단이 지속되면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통일 유보론, 통일 부담론 등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통일이 우리에게 비용보다는 편익이 훨씬 지대하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확산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 강조와 통일준비위원회 운영은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 다만 우리 민족과 동북아에 대박으로 다가올 통일을 준비하는 것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대박을 준비하고 맞이하기 위한 우리의 지속적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남북화해와 협력을 꾸준히 실천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을 이끌어 내야 할 것입니다. 이는 향후 통일대박을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은 언제쯤 될 것 같습니까. 그 때를 대비해 우리사회가 가져야 할 가치관이나 준비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경수로 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화해·협력이 지속된다면 30년 후 통일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통일은 이제 먼 미래의 꿈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는 과제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로의 통일이든 우리가 견지해야 할 원칙은 바로 평화통일이어야 합니다. 폭력을 동반하거나 피를 흘리는 통일은 결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것입니다. 지금부터 조용한 통일 준비로'신뢰의 성'을 쌓아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취업 걱정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총장님께서는 늘 젊은 대학생들과 함께 하고 계시는데, 평소 이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십니까.

▶한 대학의 총장으로서 대학생의 취업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근본적으로 취업은 국내·외 경제 사정의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절실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올해 처음으로 지방대 취업률이 수도권 대학을 추월했습니다. 지방대 육성을 위한 정부 지원이 강화되고 기업의 '탈(脫)스펙' 인재 채용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은 '청춘의 특권'입니다. 식지 않는 '도전'과 '열정'을 우리 대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집중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인 듯합니다. 부산 경남 발전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우리 사회에서 수도권 집중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블랙홀 현상에 비유될 만큼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문화와 교육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지방이 사막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앙 정부의 국가 균형 발전 대책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 지역 스스로의 자력갱생 의지와 노력이 필수입니다. 부산과 경남은 동남권 광역경제 체제의 파트너로서 그 어느 때 보다 화합과 연대를 강화해 가야 합니다.'상대를 놓치면 서로에게 해롭다'는 생각으로 상생의 윈윈 전략을 이어 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정치권은 물론이고 경제인과 문화인의 교류가 활발해져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부산과 경남 지역의 대학들이 상호교류와 협력을 더욱 증진하여 그 가교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 통일부 장관 역임…국내외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 갖춰

■ 박재규 총장은

- 경남대서 교수·총장으로 40여 년
- 총리 후보로 언론 오르내리기도

  박재규 경남대 총장은 1944년 경남 창원에서 출생 했다.

  경남대에서 교수와 총장으로서 40여 년 재직하는 동안 통일부장관, 국가안전보장회의상임위원장, 남북정상회담추진위원장, 한국대학총장협회장, 동북아대학총장협회이사장, 북한대학원대 총장, 윤이상평화재단이사장, 대통령자문 통일고문, 대통령 소속 사회통합위원회위원 등 굵직한 자리를 거쳤다.

  국제적 지명도 역시 높다. 지난 달 30일에는 러시아의 극동연방대학교에서 열린 '제3차 APEC 고등교육 협력회의'에서 개막 연설을 하기도 했다.

  이런 경력 때문에 박 총장은 국내외에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양한 직책 수행과 활발한 대외 교류를 통해 축적된 경륜과 식견 등을 바탕으로 업무를 종합적으로 판단·조정하는 역량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5월 정홍원 총리의 사퇴 발표 이후 후임 총리로 하마평에 오르면서 언론에 집중 거론된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다.

  학자 출신답게 박 총장은 교육계에서도 큰 역량을 발휘했다. 자신이 총장으로 재직 중인 경남대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탄탄한 경쟁력을 갖춘 대학으로 성장했다. 학교 관계자들은 그 공로를 대학의 명확한 비전과 목표를 제시한 뒤 전력투구한 박 총장에게 돌렸다.

  박 총장은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미국 뉴욕 언론연구위원회 공로상(1980년)을 시작으로 미국 클린턴 대통령 세계 체육지도자상(1996년), 제1회 한반도평화상(2004년), 아름다운 얼굴 교육인상(2004년), 프랑스 시라크재단 분쟁방지상 심사위원 특별상(2009년), 대한민국 녹색 경영인 대상(2010년·교육부문) 등을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북한외교론(1977년), 북한군사정책론(1983년), 북한정치론(1984년), 북한의 신외교와 생존전략(1997년), 북한의 딜레마와 미래(2011년) 등이 있다.

 

# 동북아·남북문제 정확한 분석·정보 제공 국제적 명성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극동문제연구소 건물(위)와 북한대학원대학교.
  인천 아시안게임이 폐막을 앞둔 지난 4일, 북한 고위층들이 인천을 전격 방문함에 따라 남북간 긴장 완화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이런 상황이 생겼을 때 언론매체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경남대 산하 극동문제연구소다. 관련 사안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박재규 경남대 총장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관이다.

  극동문제연구소는 동북아 국제정세와 남북한 통일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미미했던 시기인 1972년 박 총장이 설립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세계적 수준의 전문 연구 기관으로 성장했다. 연구소는 수많은 논문과 저서 출간, 심포지엄 등을 통해 '북한학'을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매김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연구소에는 북한대학원대학교도 있다. 극동문제연구소의 연구 성과와 1997년 만들어진 북한대학원의 성과를 바탕으로 2005년 설립됐다. 우리나라의 명실상부한 북한 및 통일분야 전문 대학원이다. 물론 이런 성장 이면에는 박 총장이 자리하고 있다. 1968년부터 북한과 통일을 연구해온 그를 이 분야의 개척자로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 총장이 이 연구소에 쏟는 관심은 지대하다. 어떤 의미에서 연구소는 그의 분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위 글은 국제신문 2014년 10월 8일(수)자 5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