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09.19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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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곶에서 피니스테레까지!’

  최근에 아주 열심히 읽은 소설이 있습니다.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언어철학을 강의한다는 파스칼 메르시어가 쓴 <리스본행 야간열차>란 꽤 두툼한 장편소설입니다.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수도입니다. 우리가 사는 도시 울산이 유라시아 대륙의 해 뜨는 바다를 가진 도시라면 포르투갈은 해 지는 바다를 가진 땅입니다.

  리스본에 가본 적은 없었지만 그 책을 보는 순간, 갑자기 리스본으로 가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빠졌습니다. 저에게 가끔 여행은 충동에서 시작됩니다. 한 장의 사진이나 그림, 혹은 한 줄의 문장으로 당장이라도 낡고 오래된 여행가방을 꾸리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거의 무작정적인 충동이 저를 많은 여행지로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리스본은 쉽게 떠날 수 있는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잡는 순간부터, 제 시간을 리스본 현지시각에 맞췄습니다. 리스본과 울산은 8시간의 시차가 있습니다. 간절곶에 해가 뜨고 8시간 뒤 리스본에 해가 뜨는 것입니다.

  저는 그 소설을 리스본 표준시에 맞춰 읽으며, 우리 시간과 무심하게 리스본의 시간에 적응했습니다. 저는 리스본 시간으로, 꼬박 밤을 지새우며 8시간 동안 소설을 읽었습니다. 소설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오는데 ‘시차’를 느낄 정도로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렇다고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여행소설이 아닙니다. 작가는 리스본이란 도시에 대해 소개하는 데 인색할 지경입니다. 이 소설은 작가의 전공 가운데 하나인 ‘고전문헌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역시 가공인물인 ‘아미테우 이나시오 드 알메이다 프라두’의 행적을 추적합니다. 한 사람이 남긴 연금술 같은 문장을 따라 리스본을 방문하는 소설입니다.

  작중 화자는 스위스 베른의 한 고등학교 라틴어 교사입니다. 그는 한 권의 책을 통해 30년 동안 시계바늘처럼 되풀이해 온 일상을 깨고 리스본으로 떠납니다. 그가 베른에서 리스본으로 가는 여정은 이렇습니다. 그는 베른에서 기차를 타고 제네바로 갑니다. 그리고 제네바에서 초고속열차를 타고 파리로 가, 리스본으로 가는 야간열차를 탑니다.

  ‘다음날 아침까지 이베리아 반도를 횡단하게 될 기차는 10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여정은 그렇게 표현되었을 뿐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대해 유혹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아무런 답을 주지 않습니다.

  소설이 진행될수록 저는 리스본이라는 도시보다 ‘프라두’라는 한 남자가 주는 잠언과 같은 메시지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소설 속에서 ‘피니스테레(Finisterrae)’란 지명을 접하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피니스테레는 포르투갈이 아니라, 이웃나라 스페인의 지명입니다. 해석하자면 ‘세상의 끝’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해남의 땅끝마을이 있듯 스페인의 땅끝마을입니다. 그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 길의 처음이며 끝인 곳이었습니다.

  저는 유럽과 아시아를 하나로 이어주는 유라시아 대륙의 처음과 끝을 ‘간절곶에서 피니스테레까지!’라고 호명하며 가슴이 뛰었습니다. 우리 쪽에서 보면 해가 지는 마지막 바다가 피니스테레에 있고, 그들이 기다리는 해가 뜨는 곳은 간절곶에 있습니다.

  이제 울산을 세계 지도 위에서 보고 생각했으면 합니다. 유럽이 그들의 출발인 울산을 찾아오게 하는 ‘강렬한 유혹’은 불가능할까요? 간절곶으로 찾아오는 야간열차, 그 열차를 타도록 하는 예술적인 예술이 울산에서 만들어지는 일은 요원할까요? 우리가 어느 좌표에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것, 그건 우리가 우리를 잃어버렸다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찾지 못하는 이상, 세상 어디에서도 울산으로 오는 길은 없습니다.

<위 글은 경상일보 2014년 9월 19일(금)자 19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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