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시론] 김근식 교수
[경향신문 시론] 김근식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07.2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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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남북회담의 치졸함

  인천 아시안게임 남북 실무회담이 결렬됐다. 지루한 경색 국면에서 모처럼 남북 화해의 장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감정 대결의 장이 되고 말았다.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풀 수 있으리라는 일각의 기대마저 위협받게 됐다.

  회담 결렬의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고 있지만 원인 제공은 분명 남측에 있어 보인다. 북한은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원국으로서 당연히 아시안게임 참가 의무와 자격이 있고 응원단을 보낼 수 있다. 다만 인천에서 개최되는 사정으로 남북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입국 경로와 이동 방식 및 숙소 등의 실무적 사안을 남북이 논의하는 것이다.

  실무적 논의를 하는 자리에서 대형 인공기를 자제해 달라는 발언은 도를 넘은 정치적 발언이다. 북한의 참가를 대남 통일전선 전략으로 간주하고 북의 정치적 의도를 처음부터 차단하겠다는 접근인 셈이다. 북한이 한국에 와서 한번도 대형 인공기를 사용한 적이 없는데도 이런 우려를 표명한 것은 그야말로 북의 참가를 철저히 정치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응원단 체류비 역시 북이 일언반구 꺼내지도 않았음에도 국제관례를 언급한 것은 우리 내부의 반북 여론을 의식한 국내 정치적 발언임이 분명하다.

  애초부터 박근혜 정부는 북한 참가에 부정적인 분위기인 듯싶다. 드레스덴 선언 이후 북한은 강력한 반발과 함께 박 대통령 실명 비난으로 일관했다. 최근엔 미사일과 방사포 발사 등의 무력시위로 북에 대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 있던 터였다. 정치·군사적 의제 논의를 위한 북의 국방위 특별제안에도 박근혜 정부는 즉각 거부로 대응했다. 상호 비난과 군사적 대치로 감정이 상해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선수단과 응원단을 인천에 보내겠다는 북의 제안은 그래서 박근혜 정부에 진정성 없는 평화공세로 간주됐고 오히려 반갑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왔음직하다.

  그러나 무릇 외교정책이 그렇듯이 상대방을 감정으로 대하는 것은 대외관계에서 하수를 넘어 악수에 해당한다. 북한의 공식 거부에도 불구하고 계기를 만들어서 우리 정부의 드레스덴 구상을 관철시키도록 지혜를 짜는 게 필요하고 군사적 시위에도 불구하고 군사회담을 열어 북의 도발을 규탄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게 필요하다. 감정이 상했다고 북한의 참가 자체를 내키지 않아 하고 실무회담에서 부정적 입장을 보이는 것은 잘못된 화풀이에 불과하다. 설사 평화공세라 하더라도 아시안게임 참가를 성사시켜 오히려 북한의 정치적 의도 대신 우리의 뜻이 관철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것이 현명한 대북정책이다. 본시 남과 북은 각자의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상대방과 협상에 나서고 대남전략과 대북정책을 구사한다. 남북대화에서 진정성을 내세우는 것은 명분일 뿐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번 실무회담에서 치졸한 대응을 함으로써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오히려 대규모 응원단 참가를 오랜만의 남북화해 계기로 활용하고 이를 드레스덴 선언의 구동 전략으로 연결하는 것이 현명하고 차분한 현실적 접근일 터이다. 아시안게임 참가를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면 드레스덴 구상에서 밝힌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한 체육교류의 물꼬를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 오히려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가를 적극적이고 전향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박 대통령이 밝힌 드레스덴 구상의 일부 시동이 걸릴 수 있는 것이다.

  응원단이 오면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통일전선 전술에 휘말려 우리 체제가 위협받는다는 일각의 우려는 그야말로 고색창연한 대북 피해의식이다. 오히려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여기에 머무르고 우리를 만나면서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문화에 흔들리는 게 더 현실적인 일이다. 지레 겁을 먹고 북의 평화공세에 매번 움츠러들 게 아니라 우리가 더 대범하고 통 크게 수용하고 지원하고 반기는 게 우리 국격에도 맞다. 치졸한 감정싸움이 아니라 여유로운 자신감을 왜 못 가지는 걸까?

<위 글은 경향신문 2014년 7월 22일(화)자 27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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