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07.18 09:3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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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여름산을 표현할 때 저에게는 ‘힘차게 솟아오른다’는 말이 뒤따라 떠오릅니다. 진녹의 여름산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그 순간순간, 어디에선가 불쑥 솟아오르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눈길 닿는 곳마다 푸르고 거대한 생명의 상징이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요즘의 ‘영남알프스’ 산군들이 그런 상징을 줍니다. 제가 좋아하는 길인 울주군 삼동면 산현마을에서 출강마을 지나 왕방마을까지 이어지는 산길이 그렇습니다.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숨은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영남알프스는 다른 얼굴 다른 모습으로 불쑥, 불쑥 솟아오릅니다.

  몇 해 전 중앙아시아의 톈산산맥(天山山脈)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톈산은 ‘중국의 신장웨이우얼자치구와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의 4개국에 걸쳐 있는 동서로 2500km이어지는 산맥’입니다. 그 산맥이 지나가는 키르기스스탄의 젊은이들이 구 소련연방에서 독립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난한 조국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웃 국가들이 가진 천혜의 풍부한 자원에 비해 만년설을 이고 있는 톈산과 톈산이 흘려 내려주는 차가운 물이 전부인 것에 안타까워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언젠가는 저 산과 물이 당신들의 조국을 부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알프스’라 불리는 키르기스스탄이 21세기 중에 유럽의 중남부에 있는 알프스산맥처럼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자원이 될 것이라 저는 믿었습니다.

  산은 인류에게 곧 자산입니다. 산을 가진 나라든 도시든 산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선물을 받고 삽니다. 저는 그 선물 중에서 ‘알피니즘’을 최고로 칩니다. 알피니즘은 곧 사람의 도전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오른다(Because it‘s there)”는 산악인 조지 말로리의 말입니다. 그는 또 이런 말을 남겨 알피니즘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과학적인 장비와 기술적인 도구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성취하겠다는 의지와 용기, 미지의 저 세계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라는 참을 수 없는 마음, 그것이 있으면 된다.”

  세계 최고봉 8848m의 에베레스트는 1953년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최초로 등정했습니다. 그러나 힐러리의 최초 등정보다 29년이나 앞선 1924년 6월8일, 영국의 대표적인 등반가 조지 말로리의 등반대가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했었습니다. 그들은 정상을 250m 남겨놓은 지점에서 실종되었습니다. 그리고 1999년 영국 BBC가 수색원정대를 꾸려 미라 상태의 말로리를 발견했습니다. 그가 정상 등정에 성공했는지 아닌지는 호사가들의 이야기일 뿐 조지 말로리는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한 산악인입니다.

  ‘영남알프스‘를 통해 많은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에 도전했었습니다. 1977년 우리나라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고 고상돈도 영남알프스에서 그 꿈을 키웠다고 전해집니다.

  산을 관광자원으로만 생각하면 산은 하나의 산일뿐입니다. 산을 ‘문화도량’으로 삼고 우리 지역의 인재를 만드는 ‘산교육’이 필요합니다. 지난 2010년부터 ‘영남알프스 문화콘텐츠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울주군이 ‘밴프마운틴필름페스티벌 월드투어 울주상영회‘를 오는 8월1일부터 3일까지 울주군 작수천 수변야영장에서 개최한다고 합니다.

  산을 배경으로 거친 자연에 맞서는 인간의 도전 정신을 보여주는 영화들을 영남알프스 산자락에서 만나볼 수 있다니 반갑습니다. 또한 2016년부터는 독자적으로 울주세계산악영화제를 추진 중에 있다고 합니다. 불쑥, 불쑥 힘차게 솟아오르는 여름산에서 우리의 꿈이 더욱 푸르게 솟아오르는 내일을 기대합니다.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위 글은 경상일보 2014년 7월 18일(금)자 19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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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주 2014-07-18 17:37:53
아. 눈덮인 톈산. 좋았어요. 시간이 흘러도 마음에 남을 글과 풍경.

채진석 2014-07-18 11:18:19
경남대학교가 여기에 있기 때문에 저도 이곳에 왔나 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