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06.20 08: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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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지금쯤 깊은 맛의 아라비카 원두가 생산되는 동티모르 고산지역의 로뚜뚜 마을에서는, 커피나무 가지마다 하얀 꽃이 피었다지고 푸른 커피 열매가 따닥따닥 달리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동티모르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지대마다 커피 열매가 열리면서 푸른 열매가 검붉게 읽길 기다리는 그곳 사람들의 꿈도 건기의 불볕 아래 뜨겁게 익어갈 것입니다.

  여러해 전 공정무역 홍보대사로 동티모르 커피농사를 지원하러 다녀온 후부터 커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변했습니다. 차에 대해 제 생각은 젊은 시절부터 ‘국수주의자’ 입장이었습니다. 우리 차를 최고로 여겨 즐겨 마시며 커피를 값싼 싸구려 음료로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동티모르를 다녀온 후 제 생각은 변했습니다. 커피도 좋은 음료라는 것에 몸으로 동의했습니다.

  동티모르에서 우리 앞에 커피 한 잔이 놓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손들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지를 보고 알았습니다. 붉게 익은 커피열매를 골라 따는 손, 커피열매 과육 속에서 씨앗을 꺼내는 손, 씨앗 속에서 그린빈(원두)을 찾아내는 손, 그린빈을 모아 널고 말리는 손…, 저는 적도 가까운 강렬한 뙤약볕에 커피농사를 지으며 일찍 늙어버린 그 노동의 손앞에 너무 쉽게 커피를 마셔온 일에 반성했습니다. 원산지에서 보는 커피는 생존의 또 다른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커피는 기호식품입니다. 그러나 요즘 커피는 기호식품이 아니라 가히 ‘국민음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방에서 커피숍으로, 커피숍에서 커피전문점으로 진화해온 우리의 커피 시장은 대한민국이 ‘커피공화국’이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커피값이 쌀값보다 최고 5배가량 비싼데도 커피시장은 최근 4년 사이에 크게 팽창했습니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또 생겨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커피전문점만 1만곳이 넘어섰다고 합니다. 1인당 연간 커피소비량이 성인 1명 기준으로 670잔이라고 합니다. 커피를 습관적으로 마시는 사람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커피는 우리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원가로 보자면 커피는 많이 남는 장사입니다. 지난해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발표에 따르면 커피 한잔의 원가는 200~770원 선, 커피전문점에서의 커피 한잔 평균 가격은 에스프레소 3280원, 아메리카노 4000~4500원으로 조사됐습니다.

  커피의 가장 기본적인 메뉴인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타서 내놓는 커피입니다. 200원 원가의 에스프레소가 뜨거운 물을 타면 4000원이 되고 얼음 넣어 차게 만들어 내면 5000원이 되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호황의 ‘커피 천국’은 국제 원두값 폭등으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상누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국제 아라비카 커피 가격은 파운드당 1.73달러로 지난 1월 평균 가격보다 50% 이상 급등했다고 합니다. 여기다 세계 최대 커피 산지인 브라질의 극심한 가뭄에 지난 4월 커피가격은 2.19달러로 지난해 11월에 비해서도 두 배 이상 급등했습니다. 그만큼 이윤 좋은 커피가 ‘검은 폭탄’으로 변해 폭발하는 일에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커피는 전 세계인의 음료입니다. 아침을 깨우는 ‘힘’이 커피에서 나옵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커피를 사랑해 ‘커피 칸타타’를 작곡하고, 악성 베토벤은 원두 60알씩 헤아려 커피를 만들어 마셨다고 전해집니다. 우리나라 강릉에서 커피나무가 자라는 것을 아시는지요? 강릉엔 커피 농장도 있고 커피나무 축제도 열립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커피를 국산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그들의 지혜가 참 부럽습니다. 그건 돈 많은 도시로 비유되는 울산이 가지지 못한 생산적인 지혜이니까요.

<위 글은 경상일보 2014년 6월 20일(금)자 19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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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석 2014-06-23 17:06:39
커피와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